새해 들어 한국 영화가 물 만난 고기처럼 튀고 있다.

"체인지"로 불붙기 시작한 흥행 열기가 "초록물고기"의 성공으로 한층
뜨거워진데다 김희철 감독의 "지상만가"가 22일 개봉되고 "용병 이반"
"카리스마" "쁘아종" "패자부활전" 등이 잇따라 선보인다.

이들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성 등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면서 한국
영화의 제2전성기를 앞당길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지상만가" (씨네텍 제작).

신인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팽팽한 긴장감과 애끓는 비장미,
깊이있는 사유를 함께 담고 있다.

두 젊은이의 좌절과 꿈을 강렬한 영상이미지로 표현한 이 작품은
"더 이상의 절망은 없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메시지를 "땅 위에 가득한 노래"로 풀어냈다.

천재적인 음악성을 지녔으면서도 불운한 가족사로 인해 술과 절망에
빠진 광수 (신현준), 날마다 할리우드의 스타를 꿈꾸며 맥 라이언과
엘리자베스 슈를 입에 달고 다니는 락카페 종업원 종만 (이병헌).

이들은 현실과 이상, 어둠과 빛의 양면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끊임없이
부침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신현준의 어두운 연기가 수면 아래에서 장중한 울림을 주는 것이라면
이병헌의 몸짓연기는 물방울에 부딪히는 햇살처럼 경쾌하다.

스턴트맨을 자청했다가 추락사한 종만의 비극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광수의 재기,그의 악보에 매료된 세희 (정선경)의 사랑이 "먼지 많은
세상"을 시원하게 씻어주며 가슴뭉클하게 한다.

중동지방의 민속리듬을 현대화한 이동준의 음악도 비극미를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국내 최초로 시도한 모션컨트롤시스템 (컴퓨터동화상 합성)은 이병헌이
비몽사몽간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 모습과 10층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잘도 만들어냈다.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감독이 시나리오와 제작 총지휘를 맡아
"무서운 신예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3월1일 개봉 예정인 "용병 이반" (이현석 감독 제일필름 제작)은 러시아
한인 용병과 프리마돈나의 사랑을 다룬 영화.

SKC와 기은개발금융이 제작비 25억원을 들여 러시아 올로케이션으로
만들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애절한 사랑얘기가 접목된 액션멜로물.

모처럼 만나는 박상원의 열연과 신인 김지혜의 감성연기가 돋보인다.

같은 날 개봉되는 "카리스마" (김두영 감독 영화그룹 제작)는 조직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친구 대신 감옥에 갔다온 주인공이 사랑과 우정을 통해
자신을 되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극전개에 다소 무리가 따르고 완성도도 떨어지는 편이지만 공인무술
30단을 자랑하는 한국일의 액션연기가 리얼하다.

"쁘아종" (박재호 감독 대림영상 제작)은 현대인의 소외된 감성을 타락과
순수의 상반된 이미지로 그린 작품.

95년 "내일로 흐르는 강"으로 밴쿠버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던 박재호
감독과 "유리"의 박신양, 신인 여배우 이수아, 이경영이 호흡을 맞췄다.

제목은 "독, 독약"이라는 뜻의 향수 이름.

무엇에건 중독돼 있는 요즘 사람들의 속성을 회화적으로 묘사했다.

"패자부활전" (이광훈 감독 리앤리필름프로덕션 제작)은 김희선 장동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실연당한 남녀가 악몽의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경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현대계열 금강기획이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