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여행산문집 2권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씨(66)의 "모독" (학고재 간)과 문학평론가 김병익씨(59)의
"페루에는 페루사람들이 산다" (문학과지성사 간)가 그것.

박완서씨의 "모독"은 "세계문화예술기행"시리즈의 첫권.

티베트와 네팔을 둘러보면서 느낀 그곳 사람들의 숨결이 한편의 산문시
처럼 펼쳐져 있다.

티베트의 관문인 라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작가는 "풀솜을 펴놓은 듯한"
구름과 "기억 이전의 하늘"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에
압도된다.

무섭도록 순정한 푸른색만큼이나 사람들은 또 얼마나 하나같이 욕심없고
겸손하고 착해보이는지, 그는 사미에사원에서 남녀합환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바로 부처로 보이고 절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되뇌인다.

히말라야산맥이 가장 잘 바라다보이는 지방 팅그리, 설산과 자갈밭에서
오체투지로 고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그 "만행의 법열"을 이방인이
해독한다는 것은 모독이 아닐까" 생각한다.

천지를 자욱하게 만드는 모래바람 앞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억겁의 시간속에서 존재가 풍화 직전의 먼지보다 하찮게
여겨지는 태초의 혼돈"을 경험하기도 한다.

티베트에 비해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네팔에서 작가는 지붕에
걸린 시래기와 정결한 흙부엌의 세간살이에서 예전의 우리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의 관광작태가 저들에게 모독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하는
독백은 나라밖에서 더 추태를 보이는 부끄러운 한국인을 꼬집는 대목.

김병익씨의 "페루에는 페루사람들이 산다"는 국내와 해외여행길에서
느낀 단상을 정리한 것.

모두 7편의 글이 실려있다.

"안데스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표제작에는 지난해 여름 페루에서
열린 "한국문학 콜로키움"을 계기로 두번째 들렀던 페루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해발 2천7백m의 늙은 산 마추픽추에서 "영원한 침묵"속에 몸과
마음을 헹구며, 한없이 겸손하면서도 진지한 페루인들의 얼굴을 발견한다.

티티카카에서 올려다 본 달의 신비와 쿠스코에서 발견한 "내 생애 처음
보게 크고 금빛으로 환한 별",아마존 밀림에 사는 원주민들을 보며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 케냐에서의 체험을 담은 "무구한 자연, 그 순수의
설움",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의 소련여행기 "러시아, 소련 그리고 사회주의",
중국기행인 "우공의 호수를 보며", 유년시절을 돌아보는 "기억속의 고향,
기억밖의 타향"등도 주목된다.

그는 나라밖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여행길에서도 자주 상념에 잠긴다.

그중 "비상에의 꿈"은 속초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느낀
생각들을 담은 것.아들아이의 감탄사를 들으며 그는 비상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는 "중세인들이 떠돎을 초월로 보상받듯이 우리가 옮김에서 보상받는
방법은 상승"이라며 "상승에의 열망, 비상에의 꿈을 통해 우리는
산업사회의 일상적 틀로부터 해방될수 있다"고 말한다.

즉 "중세의 예술적인 동경이 성당의 첨탑으로 모아졌듯이 현대의
과학기술이 집결된 비행예술에서 우리의 비상에의 꿈이 표현되고 거기서
상승에의 의지가 실제화되는 것"을 일깨워준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