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선정된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씨(29)의 소설집이 국내에서 곧 출간된다.

1월말 고려원에서 나올 소설집 "풀하우스"가 그것.

표제작과 "콩나물" 등 중편소설 2편이 들어있다.

"풀하우스"는 95년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자 지난해 이즈미교카상과
노마분게 신인상 수상작이며 "콩나물"은 96년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

2편 모두 가족의 의미와 현대인의 소외, 고통과의 화해문제를 담고 있다.

"풀하우스"의 주인공은 모토미라는 20대 여성.

그녀의 어머니는 가출해 정부와 딴살림을 차린지 오래고 여동생은 삼류
포르노배우다.

빠찡꼬 지배인인 아버지는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다시 모아 가정을
꾸미려고 교외에 집을 짓지만 식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꿈이 깨지자 빈 집의 공허함을 견딜수 없어
집없는 떠돌이 가족을 데려온다.

이들은 제멋대로 마당에 연못을 만드는가 하면 월세처럼 주택관리비까지
받아 챙긴다.

모토미는 낯선 침입자들의 뻔뻔스러움에 화가 나지만 속수무책이다.

집주인이기를 이미 포기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들 네식구와 자기딸들의 "어긋남"을 지켜보며 "풀 하우스로
구나"라고 무기력하게 중얼거린다.

어느날 모토미는 떠돌이가족의 딸 가오루를 씻겨주면서 화해의 길을
발견한다.

소녀의 풋풋한 모습을 보호해주고 싶은 모토미의 마음은 친동생이나
딸을 걱정하는 마음같다.

거짓 화재신고에 허둥대는 어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커튼에 불을
지른후 자전거를 타고 사라지는 소녀를 보며 모토미는 그녀의 용기에
알수없는 힘을 얻는다.

이 작품에는 큰 갈등이나 반전이 없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이라는 틀에
저항하는 의지와 조용하면서도 힘겨운 몸짓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콩나물"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

주인공 교코는 금지된 장난과 그 고통을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콩나물은 빛을 향해 뻗어올라 둘로 갈라지고 줄기는 오히려 텅빈 식물.

이는 아이를 못낳는데다 남편까지 빼앗긴 여자와 불륜의 덫에 걸린
교코의 운명과 닮았다.

물과 어둠을 빨아들여 한껏 부풀어오르지만 뿌리내릴 땅이 없는 콩나물.

그 "시루"에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깊은 슬픔"을 함께 나누는
두 여자의 고독한 정신세계가 빼곡하게 들어있다.

이들 작품에는 재일교포 2세로서 소학교때부터 부모의 별거로 가족이
흩어진뒤 어디에도 안주할수 없던 작가의 개인사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고교중퇴후 곡절많은 삶을 헤쳐왔던 그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자살충동은 죽음과 친근해지는 의식을 치르게 했으며 삶은 곧 고통이라는
등식을 가르쳤다.

그래서 "가족"은 그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껴안은 상처이자 문학의 기둥을
이루는 힘으로 작용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