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5대의 삶을 그린 "안토니아스 라인"은 철학에세이같은 영화다.

2차대전 직후의 네덜란드 마을.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딸
다니엘과 고향에 돌아온 안토니아는 장례식후 농장을 물려받아 그곳에
정착한다.

그녀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대지와 풍요의 상징.

세상풍파를 꿋꿋하게 헤쳐가는 "모계사회"의 기둥이다.

그녀는 홀아비 농부 바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선다.

딸 다니엘 역시 결혼을 원치 않는다.

"남자는 필요없고 아이만 원해요"

그녀는 곧 딸 테레사를 낳는다.

4살때부터 "굽은 손가락"과 철학을 논할정도로 똑똑한 테레사는 여교사
라라에게 영재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라라는 테레사를 가르치는 일보다 다니엘과의 대화에 열중하고
급기야 둘은 동성애관계로 발전한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모든 것을 일구는 여인들.

성장한 테레사 또한 결혼하지않고 딸 사라를 낳는다.

영화는 이들의 가족사를 수많은 상징과 역설로 덮는다.

다니엘이 감성적인 미술전공인데 비해 테레사는 이성적인 수학과 철학에
치중하고, 영화의 화자인 사라는 문학으로 출구를 찾는다.

결혼이라는 관습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려는
의지가 다양한 예술장르로 대비돼있다.

남성캐릭터는 어떤가.

이들은 대부분 홀아비이거나 상처받은 인물.

적대적인 대상이 아니라 여인들이 어루만져줘야 할 "위기의 남성"인
셈이다.

안토니아의 소꼽친구였던 "굽은 손가락"은 세파에 시달린 끝에
염세주의자가된 철학자.

어린 테레사를 통해 삶의 희망을 발견하지만 끝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한다.

농부 바스는 청혼을 거절당한 뒤에도 여성의 삶을 이해하며 "평등한
연인" 관계를 지속한다.

이에반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지주 아들들은 남성중심 권력구조의
전형이다.

영화는 이들을 교차시킴으로써 "황무지의 봄"을 예시한다.

이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강조하는데 전쟁직후의 시대상황이
동원됐듯이 고개숙인 남성들의 이면을 통해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 코아아트홀 씨네하우스예술관 동숭시네마텍 상영중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