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상조각의 선구자이며 최초의 여성조각가였던 고 김정숙 선생
(1917-1991)의 5주기를 맞아 대규모 유작전이 마련된다.

지난 92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던 제1회 회고전에 이어 두번째로
6~30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모란갤러리 (737-0057)에서 개최될 이번
유작전에서는 김씨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52년부터 타계직전인 90년까지의
시기별 대표작 35점과 미니어처 10점 및 사진자료 등이 공개된다.

60년대 모자상이나 여인상 등 인체를 중심으로 한 사실적 작품과
단순화된 형태의 인체조각에서 출발한 김씨는 자연의 본질과 생명력을
추구하는 추상조각으로 초창기 한국현대조각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70년대후반에 들어 강한 역동성과 정지, 긴장과 휴식 등 상대적인
개념을 동시에 집약시킨 "비상" 연작을 통해 작품세계를 완결시킨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추상조각의 절제된 세계를 잘 보여줬다.

창공을 향해 힘차게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듯한 날개, 혹은 날렵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창공을 선회하는 새의 형상을 지닌 "비상" 연작은 인간적
긍지와 소망에 완전하게 다가서려는 작가적 욕망과 집념이 아름다운 형태로
응축되고 상징화된 작품.

마지막 20년동안 일관되게 다룬 이 시리즈는 고도의 단순성과 엄격한
좌우대칭에 의한 절제된 볼륨감으로 생명의 순환과 질서 및 자유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생전에 "손이 물질이라는 매개물에 영혼을 새겨넣을 때 조각이
태어난다"는 말로 조각기법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했던 그는 33세때인
1950년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 뒤늦게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홍익대 조각과 제1회 졸업생인 그는 55년 조각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시시피대 대학원과 크랜브룩대 대학원에서 수학한 뒤 당시 현대조각의
관념적 교사로 지칭되던 브랑쿠지와 생명주의 조각의 거장인 헨리 무어의
작품세계에 매료되면서 따뜻함과 휴머니즘의 예술관을 익히게 된다.

아울러 당시 미개척분야였던 용접기법과 마광기법을 배워 국내에
소개했고 57년 모교교수로 부임, 조각과장과 미술학부장 조형미술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후학들을 양성했다.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냈고 여류조각가회를 창설, 8년간
회장직을 맡아 여성조각인들을 이끌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이규일씨는 "그는 서구의 현대적 조형기법을 최초로 국내에
도입.소개함으로써 표현영역 확장과 현대적 조형사고를 일깨우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라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초기의 인물상과 인물을
단순화시킨 60년대 중후반의 반추상작업, 그리고 70년대 자연을 이미지로
한 순수추상작업과 말년까지 계속된 "비상" 연작 등 그의 시기별 경향별
대표작들을 한눈에 볼수 있다"고 설명했다.

< 백창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