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6공출범 88올림픽 임수경씨방북등 87~90년의 주요사건을 담은
흑백 기록필름이 파노라마식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노는 모습을 흑백으로 잡은 카메라는 화면을
컬러로 바꾸며 롱테이크기법으로 좁은 골목을 따라 달동네를 훑으며
빠르게 올라가다 남산타워를 먼거리에서 잡으며 멈춘다.

"겉모습은 다소 나아졌을지 몰라도 가난한 자와 부자간의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다"는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함께 약5분간 진행된
서두는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의 시대적.공간적배경과 작품성격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냈다.

"전설의 고향"후속으로 18일 첫방영된 KBS2TV의 수목드라마 "머나먼
나라"(손영목극본 김종식연출)는 일단 90년대 달동네의 모습을 구석구석
비춘다.

그러나 예전의 "달동네"드라마처럼 서민들의 애환을 잔잔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달동네에서 "머나먼 나라"로 탈출을 꾀하는 젊은이들의
몸부림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을 통해 90년대의 가난의 의미와 빈부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하겠다는 것이 기획의도다.

첫회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분노를 감추며 야망을 불태우는 지형우
(이창훈분), 지형우를 사랑하는 맑은 심성의 장상하(오현경분), 사고뭉치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한수(김민종분), 차가워 보이지만 정열적인
서운하(김희선분), 김한수를 사랑하는 지소영(홍유진분)등 주요인물들의
성격과 관계를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러면서도 극의 배경이 되는 달동네 서민들의 삶을 실감있게 그려냈다.

특히 술주정 장면에서 김영철 정종준 박현숙씨가 엮어내는 무르익은
연기는 일품.

"들국화" "바람의 아들" 등에서 선굵은 연출력을 보인 김종식PD는
"이념문제가 사라진 시점에서 빈부문제를 따뜻한 시각으로 다루겠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가 주인공들의 애정관계에 함몰되지 않고 요즘 드라마로는
흔치 않은 사회적 주제를 진지하게 그려가기를 기대해본다.

< 송태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