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협의회는 36개 단체를 총괄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여성기구
입니다.

지방의 협동회원까지 합하면 100만명이 넘죠.

UN이 인정한 5개 여성단체 (5O.BPW 존타 여학사협회 등)중 4개의
한국연맹이 산하에 있고 나머지 하나도 가입토록 추진중입니다"

이연숙 여성단체협의회회장(61)은 여협은 한두 단체로는 어려운 일을
여럿의 힘으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모였으며 자신과 박영혜 정련심
이옥기씨 등 3명의 부회장이 여러 단체의 뜻을 모으는 조정자역할을
맡고 있다고 소개한다.

사무총장은 김금래씨.

"저희 일은 크게 성차별을 줄이는 것과 복지사회의 기반을 만드는 것
두가지로 나뉩니다.

올초 고교입시에서 남학생보다 높은 점수를 받고도 합격하지 못한
여학생 문제를 여론화해 피해자 1만여명을 모두 구제한 일은 대표적
성과죠.

지금은 여고의 학급당 정원이 남학생교보다 10여명이나 많은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조사하고 있어요"

94년 회장취임 이후 해온 대표적인 사업은 각부 장관을 초청해
여성관련 업무계획을 듣는 것.

"매년 6명의 장관을 초청하는 이 프로그램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올렸어요.

여성단체장들과 대화를 나눈 뒤에는 여성문제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5급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여성의 최소합격선을 정한것 (할당제)이나
대폭 감축될 뻔했던 여성간호장교의 수를 그대로 유지한 것에는 이 모임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여성계의 평가.

84년 시작한 방송모니터보고서 발간도 자리를 잡았다.

이회장이 올해 방송위 연예오락심의위원장에 선임된 것은 이 사업의
비중을 전한다.

여협행사중 가장 큰 것은 매년 10월 여는 여성대회.

94년 "정치참여" 95년 "경제주체로서의 여성"에 이어 올해에는
"정보화시대 참여"를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열심히 뛰는데도 주위를 살펴보면 남성들은 벌써 멀찌감치 앞서
가더군요.

이제부터는 조금 앞선 주제를 택해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와 정보화
문제를 선택했어요.

마침 연말엔 여성개발원에서 여성전자통신이라는 이름으로 여성관련
정보망을 완성하죠"

그는 대학재학 (이화여대 교육학과)중 유네스코학생회에서 여성활동을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68~92년 미공보원 상임고문으로 일하면서도
줄곧 소비자연맹과 가족계획협회의 일을 했다.

92~94년 존타서울클럽회장을 맡기도.

가족으로는 부군 이충섭씨와 두딸이 있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