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역사는 사실과 허구란 점에서 큰차이가 있다.

작가는 상상력과 직관을 필요로하지만 역사학자는 문헌과 유물을 통한
명확한 증거를 통해 얘기를 끄집어낸다.

그러나 소설가의 직관은 때때로 역사학자들이 하기 힘든 사실을
밝혀내기도한다.

그래서 소설가도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사가또한 역사소설에
흥미를 갖고있는 것이다.

14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SBS의 역사다큐멘터리 "왕도의 비밀"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한 작가를 통해 소설과 역사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보여준 근래에 보기힘든 수작이었다.

작가 최인호씨의 소설"왕도의 비밀"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이프로그램은
소설을 뛰어넘어 역사의 현장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자했다.

뿐만아니라추리기법이 동원된데다 작가의 상상력도 한껏 가미돼 소설의
재미도 느낄수 있었다.

최인호씨가 직접 글을 쓰고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그가 소설속에서
내세운 가설인 고구려토기속의 문양 "정"이 실제로 존재하고 이것이 고구려
광개토왕의 표식이었다는 주장을이 설득력있게 보여준 이 다큐멘터리는 또
작가 자신이 중국과 한국 일본여행을 통해 잃어버렸던 우리민족의 웅비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고있는 모습을 함께 그렸다.

그의 여행은 학술적인 답사나 관광과는 또다른 차원이었다.

"정"문양이 나오는 도자기의 파편이나마 찾아 풀리지않은 의문의
수수께끼의 답을 구하려는 작가의 몸부림은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역사가 우리곁에 살아 숨쉬고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대목이다.

이 프로그램은 제작과정에서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은것으로 알려졌다.

3년에 걸친 제작기간도 그렇지만 중국공안당국의 눈을 피해가며 촬영을
끝마쳤다는 후문이다.

만주지방까지 영토를 넓혔던 고구려와 광개토왕을 부각시키는것 자체가
중국측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프로그램은 국내성과 광개토왕비 광개토왕릉 장군총등 만주 집안에
있는 찬란한 고구려유적을 국내 최초로 카메라에 잡아 다큐멘터리의 내밀도
및 신선도를 더해줬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심야시간대에 편성할 것이 아니라 보다 중요한
시간대에 방영했으면 하는 것이다.

<오춘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