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의 장쾌한 인간드라마를 엮은 "동주 열국지"(전10권)의 한글
완역본이 새로 나왔다.

64년 출간됐으나 절판됐던 것을 민음사에서 한글세대에 맞도록 다듬어
다시 펴낸 것.

원로시인 김구용씨(73)가 30여년간 심혈을 기울여 결정본으로 내놓은
"열국지"는 200자 원고지로 1만5,00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동양고전.

등장인물이 1,000명을 웃도는데다 수많은 국가들의 명멸과 실타래같은
사건들이 얽혀져 일본에서도 완역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김씨는 "서구문학을 이해하려면 희랍신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듯 동양
문학에서는 "열국지"에 관한 지식이 필수적"이라며 "힘에 부쳐 3번씩이나
번역을 중단한 적도 있지만, 역사를 통해 동서고금의 이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향항판 오계당 "동주열국지"를 텍스트로 삼았으며 오자가 많아 상해판
"회도동주열국지"를 참조했다.

그는 "상해판은 글씨가 작은 대신 비주가 풍부해 크게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열국지"는 기원전 8세기 주나라 때부터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루기까지
550년간의 춘추전국시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자로 대표되는 제자백가의 시대이자 군웅할거의 대격변기였던 이 시기는
중국의 후대 저작물이 찾아가는 문화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수많은 고사 숙어가 여기에서 나왔으며 절개의 표상인 "백이"와
"숙제",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등 역사속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열국지"는 후일 "삼국지연의"로 이어지는 대하역사소설이지만 문헌과
논설 평전등이 망라돼 있어 픽션과는 구분된다.

"삼국지"가 영웅중심의 서사적 구조로 되어 있는데 반해 춘추오패와 전국
칠웅의 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내용도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다.

난세의 권력다툼과 약육강식으로 점철된 고대사를 있는 그대로 묘사,
세상을 헤쳐가는 지혜를 터득하도록 했다.

첫머리에 나오는 옛시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웅 다섯이 일어나 춘추시대 소란했으나/겨우 청사에 몇줄 성명을 남겼을
뿐/경각간에 흥하고 망했으니 덧없다/보아라 북망산도 황량하다/앞사람
가졌던 땅을 뒷사람이 차지했으니/용과 범이 서로 싸운 걸 일러 무삼하리요"

특히 "6국을 망하게 한 것은 6국이요, 진나라가 망한 것은 스스로에
의해서다"라는 분석은 역사의 흥망을 보는 동양적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역자 김씨는 경북상주태생으로 성균관대교수를 지냈으며 시집 "시" "구곡"
"송 백팔"과 "옥루몽" "삼국지" "수호전"등을 번역, 펴냈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