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윤이상씨가 끝내 고국방문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4일
0시40분(한국시각) 독일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78세.

윤씨는 한국출신 작곡가로는 유일하게 세계적 위치에
오른 현대음악의 거장.

폐렴등 지병이 악화되면서 죽기전 고향땅을 밟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정치적 이유로 끝내 이루지 못했다.

경남통영이 고향인 그는 17세때 일본으로 떠나 음악을 공부했고,
귀국후 교사로 일하다가 56년 다시 파리국립음악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59년 독 다름슈타트음악제에서 12음기법으로 한국 궁중음악색채를
표현한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67년 이른바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서울로 강제소환된 뒤 2년여
옥고를 치르고 71년 독일에 귀화했다.

이후 90년 북한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북한측이 윤이상음악
연구소를 세우는 등 예우함으로써 친북인사로 낙인찍혔다.

이로 인해 94년9월 국내에서 열린 윤이상음악제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의 음악은 한국전통음악과 서양현대음악의 기법을 조화시킨 것이
특징.

세계음악계에서는 그를 "동양적 현대음악의 개척자"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대표작은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87년 북한국립교향악단(지휘 김병화)이 초연한 칸타타 "나의땅
나의민족이여", 72년 뮌헨올림픽개막작품 오페라"심청", 68년 옥중에서
작곡한 오페라 "나비의 꿈"등 150여편.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