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표시인중 한사람인 황지우씨(43.한신대교수)가 9~21일 서울
종로구관훈동 학고재(739-4937)에서 조각전을 갖는다.

출품작은 "바람속에 다른 생의 피부를 느낄때""뜰앞의 잣나무""멀어지는
다도해"등 24점.

황씨는 이번 전시회와 함께 발표작 하나하나에 시와 산문 형식의 해설을
곁들인 화집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를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황씨는 본래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사 재직시엔 표지그림등을 직접 그릴 정도여서 알만한 사람들은
그 솜씨를 모두 알고 있을 정도. 그러나 조각에 손을 댄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라고 고백한다.

화집 서문을 통해 그는 "90년대 들어 생을 몽땅 탕진해 버린 것같은
고갈의 느낌이 나자신을 결박, 도무지 아무것도 쓸수 없었다.

정전상태와 흡사한 어둠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치던중
뜻밖에 진흙의 물컹함에서 잃어버렸던 시원의 감각을 되찾을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할말을 잃고 침묵속에서 고통받던 그에게 숨통을 트이게 해준게 바로
조각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그의 조각들은 고통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당시의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갈등으로 몸부림치거나 고통받고 허물어져가는 인간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형상화되어 있는 것.

흙작업을 하며 새롭게 깨어난 탓일까, 그의 시세계는 예전과 판이하게
다르다.

80년대 암울한 사회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냉소 일색이던
시들은 생명의 근원과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

황씨는 "조각은 농축된 감정을 간결 담백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시와 같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조각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밝혔다.

미술평론가 이영욱씨는 "기존의 미술인들이 답습하던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 참신하면서도 자기고백적 성격이 짙은 새로운 표현기법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황씨는 전남해남 태생으로 서울대미학과를 졸업했으며 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등의 시집을 냈다.

< 백창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