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합작 화성탐사선 발사·우주정거장 운영도 '흔들'
[우크라 침공] 우주로 튄 '불똥'…러 "원웹 위성 발사 않겠다"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가 영국 정부가 주주로 참여한 통신위성 기업 '원웹'의 위성 발사를 유보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의 불똥이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튀고 있다.

이번 조치는 우주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우주발사 산업에서 러시아의 몫이 더욱 줄어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주 분야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시작되며 이미 압박을 받아왔다.

미국과 러시아가 두 축이 돼 운영해온 국제우주정거장(ISS)은 바람 앞에 등불이 된 상황이며, 올해 발사할 예정이던 유럽우주국(ESA)과 러시아의 공동 화성탐사선 발사도 2년 뒤로 미뤄지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돼 왔다.

◇ 막판 통보에 원웹 '발 동동'…러 우주발사 산업 '붕괴' 계기될 수도
로스코스모스는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영국이 러시아에 적대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을 들어 원웹 위성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장하고 영국 정부는 원웹 지분을 매각해야만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4일 발사를 위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장에 세워진 소유스-2.1 b 로켓에서 원웹 위성을 모두 제거하겠다고 했다.

[우크라 침공] 우주로 튄 '불똥'…러 "원웹 위성 발사 않겠다"
원웹은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처럼 우주 인터넷망을 구성하기 위해 소유스 로켓을 이용해 지구 저궤도에 428기의 위성을 발사해 놓은 상태며, 이를 650기까지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로스코스모스 측이 우주 발사를 불과 사흘 남기고 이런 조건을 제시함에 따라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지난 2020년 원웹을 파산 위기에서 구하면서 지분을 갖게 된 영국 정부는 강경한 입장이다.

러시아 로켓을 이용하는 것이 더는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부 성명이 나온 데 이어 크와시 쿠르텡 산업에너지부 장관은 트윗을 통해 로켓 발사와 관련한 협상은 없을 것이라면서 "영국 정부는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주주들과 향후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접촉 중"이라고 했다.

로스코스모스를 이끄는 드미트리 로고진 사장은 발사장의 러시아 요원들이 로켓에서 영국과 일본, 미국 국기를 지우는 동영상을 트윗에 올리고 "발사장의 요원들이 몇몇 국가의 국기를 없애면 로켓이 더 아름다워 보일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며 감정적 대응을 하기도 했다.

영국 정부가 강경한 만큼 로스코스모스는 4일 중으로 발사 취소를 공식 선언하고 소유스 로켓을 조립시설로 다시 옮겨 탑재된 원웹 위성을 내릴 것으로 예측된다.

우주산업 전문가들은 원웹이 대체 로켓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겠지만 궁극에는 소유스 로켓을 통해 우주발사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해온 러시아 우주산업이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항공우주안보 프로젝트 책임자인 토드 해리슨은 UPI 통신과의 회견에서 "러시아 우주산업은 미국 시장을 잃어 이미 급락 중이었다"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주 분야 문제를 더 악화해 궁극에는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냉전 이후 이렇게 빠른 속도의 재편을 보지 못했다"면서 "러시아와 같은 나라나 중국처럼 잠재적 침략 열망을 가진 국가와 사업을 할 때의 위험을 분명히 보게 됨으로써 스페이스X처럼 러시아 밖의 저비용 우주 발사 업체가 최대 승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우주 전문가 크리스 퀼티도 "세계 7대 중형 로켓 중 5종이 앞으로 2년에 걸쳐 퇴역하거나 새로운 로켓으로 대체되는 시기여서 원웹이 남은 220기의 위성을 어떻게 지구 저궤도에 올릴 것인지를 결정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면서 소유스 로켓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우주 발사에 투입됐던 만큼 소유스 로켓 없이 해나가는 것이 불편을 초래할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은 이미 새로운 아리안로켓과 베가 C 로켓 개발을 추진 중이며, 러시아 로켓을 이용해온 다른 국가들은 스페이스X와 아리안 스페이스,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로켓에서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러시아와 합작 화성 탐사선 발사·우주정거장도 삐걱
[우크라 침공] 우주로 튄 '불똥'…러 "원웹 위성 발사 않겠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강경 제재가 이어지면서 ESA와 러시아가 합작해 추진해온 화성 탐사 '엑소마즈'(ExoMars) 미션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엑소마즈는 러시아가 발사 로켓과 하강 모듈, 착륙선 등을 제공하고 ESA는 로버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개발해 화성의 생명체를 탐사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2020년 발사하려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준비 미흡으로 연기된 바 있다.

ESA는 지난 1월 엑소마즈 미션을 9월에 발사할 준비가 됐다고 선언했지만 지난달 28일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제재와 큰 맥락에서 올해 발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졌다"고 발표했다.

행성의 공전 궤도 상 화성을 향해 우주선을 띄울 수 있는 발사의 창이 2년마다 열리는 점을 고려할 때 2024년 여름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ESA는 "회원국이 러시아 측에 부과한 제재를 전적으로 준수하고 있다"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력뿐만 아니라 유럽인의 가치를 전적으로 준수해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데 절대적 우선권을 두고있다"고 강조했다.

또 로스코스모스가 유럽연합(EU)의 제재 결정으로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발사장에서 예정됐던 우주발사를 중단하고 인력을 철수키로 한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갈릴레오 GPS 위성을 비롯해 러시아 로켓을 이용한 발사계획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협력 상징이 돼온 ISS도 위협받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로고진 사장은 지난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러시아) 항공우주산업뿐 아니라 그들(미국)의 우주 프로그램도 저해할 것"이라면서 "우리와의 협력을 막는다면 ISS가 궤도에서 이탈해 미국이나 유럽에 떨어지는 건 누가 막느냐"라고 했다.

러시아는 우주화물선 '프로그레스' 엔진을 주기적으로 분사해 우주정거장의 고도를 400㎞ 안팎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있다.

러시아가 우주정거장의 고도 유지 임무를 방기하는 일이 당장 벌어질 상황은 아니지만 2024년 현재의 운영협약이 종료되면 우주정거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러시아 측이 공언해온 점과 맞물려 두 나라 우주 협력의 고리는 더 빨리 끊길 수도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크라 침공] 우주로 튄 '불똥'…러 "원웹 위성 발사 않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