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단백질의 당화 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단백질의 당화 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인기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나온 유재석 씨의 ‘부캐’가 큰 화제였다. 다 같은 유재석이지만 하프를 연주하는 ‘유르페우스’, 드럼을 치는 ‘유고스타’, 연예 기획사 대표 ‘지미유’ 등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캐릭터가 대거 나왔다.

우리 몸에도 같은 단백질을 서로 다른 캐릭터를 만드는 ‘부캐’ 기능이 존재한다. 체내 단백질의 종류는 100만 개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단백질을 구성하는 유전자 수는 2만 개 정도다. 하나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이 약 50개의 ‘부캐’를 만든 셈이다. 단백질은 세포 내에 인산기, 메틸기, 아세틸기 등 여러 분자를 이용해 부캐를 생성한다. 이런 과정을 단백질의 ‘수식화’라고 부르는데, 그중 하나가 단백질에 ‘당(糖)’을 결합하는 ‘당화 과정’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여러 당화 과정 중에서도 ‘오글루넥당화(O-GlcNAcylation)’에 주목하고 있다. 오글루넥당화가 비만, 당뇨병, 암 등 여러 질환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어서다. 오글루넥당화는 포도당 유도체인 ‘아세틸글루코사민’이라는 당을 단백질에 붙이거나 떼면서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는 과정이다.

아세틸글루코사민이 포도당에서 유도되는 물질이다 보니, 체내에 영양분이 많은 상태에서는 오글루넥당화가 많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비만 환자는 인체 내 많은 조직의 오글루넥당화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 높은 오글루넥당화 수치는 비만을 유발하는 여러 단백질을 과도하게 활성화한다.

당뇨병도 마찬가지다. 혈액 내 포도당이 높게 유지되는 당뇨병 환자에게서는 오글루넥당화 작용이 과도하게 많이 일어난다. 이는 인슐린 분비를 저하시키고, 혈당을 높은 상태로 유지한다. 높은 혈당은 다시 오글루넥당화를 늘리고,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당뇨병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글루넥당화는 암의 성장과도 연관이 있다. 일반적인 세포는 성장, 분화 후 자연스럽게 사멸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암세포는 세포 사멸을 회피하며 계속 분열한다. 이런 세포의 분열과 대사에 관여하는 단백질이 오글루넥당화의 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암세포는 자신들의 왕성한 대사 활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상 세포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포도당을 소비하기 때문에 오글루넥당화 수치 역시 만성적으로 높게 유지된다. 이는 결국 오글루넥당화 표적 단백질의 활성을 비정상적으로 오래 지속시킨다. 악성 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최근에는 오글루넥당화를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신경 전달이나 신경 세포 분화와 관련된 단백질의 약 40%가 오글루넥당화에 의해 기능이 조절되고 있어서다.

노화가 진행되면 뇌세포의 포도당 흡수 능력이 감소하는데, 이로 인해 오글루넥당화 수치가 정상보다 낮게 유지된다. 당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글루넥당화가 인류의 주요 질병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며, 관련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러스 감염이나 백신 접종 후 항체 생성에 오글루넥당화 수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인체 침입을 중개하는 단백질로 알려진 스파이크 단백질이 오글루넥당화 과정을 통해 활성화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백신 접종 후 면역력을 형성하는 데도 오글루넥당화 과정이 필요하다. B세포, T세포 등 주요 면역세포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려면 오글루넥당화 수치가 적절하게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수치가 과도하게 높거나 낮으면 백신을 맞더라도 충분한 양의 항체를 생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박성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박성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선임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에서는 오글루넥당화를 이용해 면역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팀은 오글루넥당화가 여러 면역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세균성 독소 활성과의 관계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연구팀은 지난해 ‘햄버거병’으로 알려진 용혈성 요독 증후군을 촉진하는 것이 과도하게 높은 오글루넥당화 수치라는 것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