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원자력연구원 박사 / 사진=서범세 기자
김인규 원자력연구원 박사 / 사진=서범세 기자
대전 관평동 도심을 지나 산속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국내 원자력 연구개발을 책임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있다. 연구원의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는 원자력 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포함해 원전 수명 기간 중 고장 최소화, 사고 예방 및 대처 방법 등을 연구한다.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를 다시 환경·재해평가연구부로, 연구부를 다시 팀으로 쪼개면 김인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이학박사)이 속한 방사선생물학연구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5명의 방사선생물학연구실 연구원은 원자력 시설물에서 방사선이 유출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해양이나 대기오염 가능성을 주로 연구한다. 이를 통해 해양생물을 섭취하거나 대기에 노출됐을 때,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분석한다. 최근 연구실은 방사선 연구 기술을 활용해 항암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이다. 종류에 따라 방사선이 닿지 않는 암이 있는데, 방사선 민감도를 높이는 인자를 찾아 방사선 치료 효과를 끌어올리겠다는 게 연구의 시작이었다.

방사선 저항성 강한 ‘암줄기세포’ 연구에서 출발
김 박사는 30여 년간 방사선을 연구했다. 성균관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생리학 및 생화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엔 충남대와 전북대에서 생명과학 겸임교수를 거쳤다. 2015년부터 약 2년간 방사선생명과학회(KSRB) 회장도 맡았다. 그가 주축이 된 방사선생물학연구실은 최근 암줄기세포에서 찾은 새로운 항원 기반 항체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방사선기술개발사업’ 국책과제 수주를 통해 신약을 연구하던 김 박사팀은 ‘새로운 항암 표적을 찾아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중에서도 방사선 치료가 잘되지 않는 암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김 박사는 방사선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암 세포주를 찾아 방사선 치료 효과를 높이는 치료제 개발을 계획했다. 범인은 암줄기세포였다.

그는 “암줄기세포가 방사선에 저항성이 강하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줄기세포가 우리 몸의 장기를 재생하고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것처럼 암에 있는 암줄기세포는 암 조직을 유지하고, 치료 후 줄어든 암세포를 재생시켜 암을 재발시키거나 전이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팀은 우선 줄기화암세포와 비줄기화암세포를 분리해 암줄기세포의 특성을 나타내게 하는 인자를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암 줄기화란 암세포 내의 암줄기세포 발현 유전자가 작동해 암줄기세포가 만들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 중 기존에 연구결과가 많지 않은 ‘ALDH1’ 인자에 주목했다. 암세포를 ALDH1 발현이 많은 ‘ALDH1+’와 많지 않은 ‘ALDH1-’로 분류한 뒤, 이 둘의 차이점을 찾아갔다. 그중 하나가 ALDH1+에만 포함된 ‘TM4SF4’라는 단백질이었다. 중화항체를 이용해 TM4SF4의 기능을 무력화시키자, 상피-중간엽 전이(EMT) 현상 및 오스테오폰틴(OPN) 단백질 발현이 감소함을 확인했다.

EMT는 상피세포였던 암세포가 중간엽 세포로 변하는 현상이다. 중간엽 줄기세포는 다양한 세포로 분화가 가능해 암세포의 전이도 촉진한다. OPN은 뼈를 생성하는 단백질인데, 암줄기세포와 비슷한 역할을 해 암세포의 사멸을 억제하고 항암 면역반응을 무력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김 박사팀은 TM4SF4가 폐암의 성장과 전이에 관여하고, 방사선치료 저항성을 유발하는 물질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TM4SF4는 다른 암 줄기세포에서도 발견되지만, 특히 방사선 저항성이 가장 강한 폐암 줄기세포로 실험을 진행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김 박사팀은 TM4SF4를 활용해 생쥐 단일클론항체를 제조한 데 이어, 최근 세종대 류춘제 교수팀과 함께 인간화항체 제작에도 성공했다. 인간화항체란 동물을 이용해 만든 항체로 인해 생기는 면역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이를 사람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생쥐 단일클론항체는 동물실험, 인간화항체는 세포실험에서 각각 암세포 크기 감소 등 효능을 확인했다. 두 가지 항체에 대해 국내 및 국제(PCT) 특허도 출원했다.

김 박사는 “TM4SF4 항체를 폐암 세포에 투여한 결과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암세포가 500개 가까이 생긴 반면, TM4SF4 항체를 투여한 세포에서는 200개 안팎으로 나타났다”며 “방사선 민감도 실험에서는 6Gy(그레이) 용량의 방사선을 조사했을 때, 대조군에서는 암세포의 수가 60% 줄어든 반면 TM4SF4 항체 투여 세포에서는 약 90%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폐암 외 다른 암 치료제로도 개발할 것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번 기술을 케이피에스의 미국 자회사인 알곡바이오에 이전했다. 원자력연구원의 방사선기술 분야에서 이뤄진 최초의 신약 개발 관련 기술이전이다. 착수료 2억 원에 신약 임상시험에 모두 성공하면 6억 원의 기술료를 추가로 받는 조건이다.

케이피에스는 기존에 주력하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인장사업에 최근 바이오를 더해 진단키트 등 바이오 기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알곡바이오는 특정 약물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 미리 알아보는 동반진단과 맞춤형 정밀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한다.

기술을 이전받은 알곡바이오는 내년 상반기 전임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돌입한다. 이후 국내와 미국에서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원자력연구원도 관련 연구를 지속 지원한다. 방어특허나 신규특허 등 관련 특허도 출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임상시험 허가를 위해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키겠다는 목표다. 현재 진행 중인 환자 유래 암 조직 이식(PDX) 실험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 논문도 작성한다. 환자의 암 조직을 면역결핍 생쥐에 이식한 뒤 항체 약물을 투여한 생쥐와 투여하지 않은 생쥐를 비교하는 실험이다. 김 박사는 “최근 신약 개발에 있어 논문의 파급력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알곡바이오는 TM4SF4 항체치료제를 포함한 후보물질들의 연구개발 계획을 내년 5월께 발표할 예정이다. 알곡바이오는 또 다른 기술이전 등으로 TM4SF4 외에 다른 항암 파이프라인도 확보 중이다. TM4SF4 항체는 다른 암으로도 적응증을 확대한다.

김 박사는 “TM4SF4는 다른 암의 줄기세포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내년에는 다른 암으로도 연구를 시작해 관련 특허를 출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선생물학연구실은 TM4SF4 항체 외에 또 다른 자체 항암 파이프라인 개발도 지속한다. 김 박사는 “조기에 결과물을 내 이를 실제로 신약 개발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기업체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랩 탐방] 김인규 원자력연구원 박사 “신규 표적 기반 폐암 치료제 내놓겠다”
이도희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