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불리는 대규모 기계부수기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노팅엄의 직물공장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1차산업혁명으로 자동화 기계설비가 수작업을 대체하면서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게 된 수많은 근로자들의 분노가 폭력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AI로 인한 노동시장 구조적 변화 불가피

조성진 전임연구원
조성진 전임연구원
2021년, 현재 우리는 4차산업혁명을 마주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의 발달로 더 넓은 범위의 자동화, 지능화가 진행됨에 따라 영향을 받는 직업군이 1차산업혁명 시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광범위할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올해 미국 등 8개 주요 국가의 800개 직업, 2,000개 직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 10명 중 한 명 꼴로 10년 안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가속도가 붙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물결로 인해 일자리 대체가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과거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참극이 다시 일어나게 될까? 다행스럽게도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AI로 인해 일자리가 소멸하는 것보다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 더욱 클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18년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AI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2배 이상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SW 엔지니어, AI 개발자, 데이터분석가와 AI로 인해 파생될 새로운 직업군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AI와 로봇 분야의 인력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데 비해 새로운 인력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면 미스매칭으로 인한 실업률 증가가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공급이 수요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 해결해야

가장 먼저 부족한 공급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기관이 나서서 크게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AI, 빅데이터, 반도체 등 4차산업 관련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미래 유망 직종과 관련된 학과를 증설하거나 학과 정원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이름만 바꾸고 수업내용은 그대로인 ‘무늬만 신산업 학과’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산업계의 변화에 맞춰 교육과정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현재 수도권 대학은 39년 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총정원이 동결돼 입학정원과 학과 증설을 제한받고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경우 2008년부터 입학 정원이 55명으로 고정되다가 작년에 들어서야 겨우 70명으로 증원됐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스탠퍼드대는 141명이었던 컴퓨터공학과 입학정원을 739명으로 다섯 배 이상 늘었다.

결국 공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교육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 먼저 낡은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늘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인 노동시장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교육기관이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미래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부가 국내 전체 산업, 직군별 현황을 파악하고 AI를 통해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향후 유망 직종의 필요 역량 및 스킬을 데이터화해 공유해야 할 것이다.

AI활용한 근로자의 직무전환 지원

빨라지는 디지털 전환 속도에 맞춰 많은 기업들은 AI 인재 유치에 더욱 노력을 쏟고 있다. 하지만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현 노동시장에서 새로운 인력을 뽑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 많은 기업들은 기존 인력들의 재교육을 통해 AI 인재를 갖춰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직무전환을 위한 기존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근로자의 수준, 보유 스킬과 상관없이 일률적인 커리큘럼으로 교육이 진행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직무전환 성공률이 높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자의 상황에 맞춰 최적의 직무를 추천해주고, 지금까지의 경험, 교육 이수 사항 등을 고려한 개인화 직무전환 로드맵을 제시해주는 'AI 재교육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미국의 스타트업 '퓨처핏(Futurefit)'이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근로자의 인적사항, 적성검사 결과, 경력, 자격증, 수행한 프로젝트 등 다양한 변수를 통합해 AI를 통해 개인화된 맞춤형 직무를 추천해주고 필요 스킬, 자격증, 교육에 대한 step-by-step 로드맵을 그려준다. 기업은 학습시간, 시험, 인증 등 근로자의 교육효과를 측정하여 결과를 데이터화하고 교육성과를 제고해 AI를 더욱 고도화 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직무전환 성공률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일자리 미스매치 최소화

노동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미스매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와 코로나19의 충격으로 괴리가 더욱 커졌으며 현 노동시장 자체만으로는 효과적인 해소가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다.
맥킨지는 비즈니스 특화 SNS 플랫폼인 링크드인과 협업하여 4년간 회원들의 직무이동 흐름을 분석해 직무전환 경로를 도식화하는데 성공했다. 감소하는 직종인 행정 보조원에서 추가 교육을 통해 인사 직무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망직종인 채용 매니저로 직무가 이동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대로 행정 보조원에서 다른 감소하는 직종인 판매사원이나 비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AI로 인해 감소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구직자들을 유망한 직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커리어 패스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AI Job Matching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업 채용공고가 뜨면 구직자가 지원서를 작성해야 하는 등 긴 채용절차를 밟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기업간, 또는 기업-정부간 공동 구축된 구직자 및 직업공고 데이터풀을 기반으로 빠른 시간 내에 AI가 적합한 인재와 기업을 매칭해줄 수 있다. 작년 미국식품산업협회는 맥킨지 및 스타트업 '에잇파일드(Eightfild)'와의 협력하에 ‘Talent Exchange’ 플랫폼을 구축하여 코로나19로 인력축소가 불가피한 기업과 신규 고용이 필요한 기업을 AI를 통해 적시 연결했다. 이력서에 제시된 직책, 분야, 경험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대는 타 대학 대비 자연어 처리가 약함에도 기업에 좋은 인재 배출해왔다’는 통계나, ‘체스선수는 코딩을 잘할 가능성 높다’는 연구결과 등을 활용하여 이력서에 나오지 않았지만 기입한 정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활용하였다. 이 플랫폼을 통해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일하던 직원이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 신속히 쇼핑몰 매니저라는 직업을 구하는 등 AI를 통해 ‘안 해봤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냈다.

AI로 대체되는 일자리, AI로 해결해야

1차산업혁명에 저항하였던 ‘러다이트 운동’은 기술 변화의 거대한 물결을 막지 못했다. AI를 이용한 4차산업혁명 또한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다. AI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에 맞춰 교육기관과 정부가 협력해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공급 방안과 미래인재 양성 대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 AI를 활용하여 직무전환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근로자들은 스스로 배움의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AI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비해 모두가 능동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조성진 KT경제경영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