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정책프리즘] 위험 거버넌스 수립이 바이오의 미래를 정한다
위험에는 주관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위험에 대한 해석, 평가, 예측은 저마다 다르다. 최신 바이오 기술은 기술 개발에 수반될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 및 부작용의 규모, 발생 개연성 등 그 불확실성이 더욱 크다.

하지만 정부, 과학계, 기업, 시민단체 혹은 개별 행위자들의 문제해결 능력은 제한돼 있고 종종 불평등에 직면하기도 한다. 국제위험 거버넌스위원회(IRGC·International Risk Governance Council)는 위험관리의 통합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위험에 대처하는 과학적·경제적·사회적 측면을 통합하고 이해관계자의 효과적인 참여를 포함한 포괄적인 위험평가 및 관리전략이다.

이 프레임워크는 다양한 가치와 분산된 권한들의 맥락 속에서 위험을 식별, 사정, 관리, 평가하는 과정과 커뮤니케이션, 이해관계자, 맥락의 원칙을 적용한다. 이번 호에서는 통합 프레임워크 4단계별로 우리나라 바이오 정책의 현실을 사례분석해 위험 거버넌스의 의의를 음미하려 한다.

step 1. 사전평가(Pre-assessement)

위험은 발생 즉시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위험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명확히 해 문제를 정의하고 위험을 평가해서 관리하는 기준을 사전에 형성해야 한다.

사전평가는 위험의 인지를 높이기 위해 위험을 정의하고, 위험 신호에 대한 제도적 수단 마련, 위험을 다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단계다. 위험 발생 이후 위험대응책을 설계하는 것보다 사전평가로 위험에 대한 예비조사를 실시해 위험을 정의하고, 우선순위 계획과 관리경로를 세워야 한다.

사전평가 단계에서는 위험에 대한 다양한 관점, 기회, 전략을 포착하기 위해 관련 행위자 및 이해관계자 그룹을 포함한다. 저마다 위험으로 간주하는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에서 정부는 각 이해관계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이해관계자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경험 정보, 곧 수용성을 파악해야 한다.

코로나19 초동 대응에서의 사전평가
메르스를 통해 새로운 감염병 위험 대비를 위한 사전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지만 2020년 코로나19 역시 사전평가에 실패했다.

첫째, 원천으로부터 들어오는 감염자들을 차단하고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알 수 없는 확진자가 발생하며 지역사회 감염 확산이 시작됐다. 둘째, 경제·사회적 약자의 충격을 보호하지 못했다. 정부는 격리 기간과 지침을 일률적으로 정해 소상공인, 노인과 같은 경제·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키웠다. 셋째, 감염병 백신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 백신 준비는 개발 및 제조뿐만 아니라 국민의 수용성까지 포함된다. 정부는 국민들의 거부감과 두려움을 검토하고 준비해야 했다.

메르스를 겪었음에도 위험의 대상을 개념화하고 위험인식의 공통된 합의와 위험을 선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경로와 기준을 정하는 제일 기초적인 단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감염병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위험에 대한 문제를 프레이밍하고,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이종장기이식 관련 법안 및 관리 감독 부처의 모호함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2015년 당뇨병 원숭이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해 혈당 유지에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세계 최초로 국제 임상 진입 기준에 맞춘 이종췌도 이식 임상시험계획(IND)을 식약처에 제출했다. 하지만 관련 규제가 부재해 사업단이 임상시험계획을 추진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존재했다. 올해 이종장기이식법 초안이 마련됐지만, 관련 연구가 준비되지 않아 법 제정은 시기상조라며 유예됐다.

이종장기이식 특성상 예측 불가능한 감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최소 2~5년은 추적해야 한다. 하지만 이종장기이식 대상자의 지속적인 추적관찰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 관련 제도가 부재하면 모든 책임을 연구자가 져야 할 수 있고,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어렵다. 환자와 연구자를 보호할 수 없다면 현실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되기 어렵다.

step 2. 위험사정(Risk Appraisal)

위험은 측정이 필요하다. 위험사정은 위험 감수 여부와 감수할 경우 위험을 줄이거나 억제할 방법에 대한 지식 기반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위험의 사실적, 물리적 및 측정 가능한 특성에 대한 평가인 위험평가에 더해 우려평가가 위험사정의 주요 요소로 제시된다.

우려평가는 위험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과 우려에 대한 평가를 의미한다. 우려평가 과정에서는 위험 발생 가능성이나 확률을 식별하고, 위험의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우려, 즉 가치체계와 인식, 사회정서적 관심, 사회경제적 영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유전자변형생물체
소비자에게 알 권리와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 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표시제를 후보 시절에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으며, 2018년에는 완전표시제에 대한 국민청원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GMO 자체가 안전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과학한림원(NAS), 미국의사협회, 영국왕립협회 등은 GMO의 유해성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2016년 노벨상 수상자 108명은 GMO의 안전성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또 GMO는 특허 받기 전, 수출할 때 그리고 수입할 때 각국에서 안전성 평가를 받으므로 시판되는 GMO는 안전성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GMO 식품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GMO는 다음세대의 영향을 확인하기에는 비교적 짧은 기간 연구가 이루어져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주 이유다. 토종품종은 감소하고, 내성이 생긴 슈퍼잡초와 해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식지 않고 있다.

우려평가 단계에서는 대중을 포함한 이해관계자가 해당 위험과 잠재적 결과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조사해야 한다.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우려는 전문가와 일반인의 차이가 크다. 사회정서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려평가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의 혁신을 포함하는 새로운 의사결정 방법 구상이 필요하다.

step 3. 특성화 및 평가(Characterization and Evaluation)

위험의 영역은 광범위해 위험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위험의 복잡성, 불확실성, 모호성을 구분하여 위험의 심각성을 구분해야 한다. 이후 위험을 허용하거나 견딜 수 있는 수준을 확인하고 판단한다.

이 과정은 위험의 중요성과 수용성을 결정하고 의사결정을 준비하는 단계다. 특정 기술의 선택, 대체 가능성, 위험과 편익의 비교 등 위험감소 조치와 과학적 및 정책결정 맥락 사이에서 옵션들이 제공된다. 그 후 위험감소 조치 여부에 대한 판단을 진행한다.

폐지방 재활용과 규제 공백
폐지방에는 콜라겐, 엘라스틴, 세포외기질 등 유효한 성분이 많이 존재해 인공 피부, 의약품, 의료기기 원료 등으로 사용할 수 있어 고부가가치 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폐지방은 주로 지방흡입술의 부산물로 생산되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방흡입술이 이뤄진다. 하지만 ‘폐기물관리법’ 제13조의 2에 따라 태반을 제외한 인체 부산물의 재활용이 금지되어 있어 매년 200톤가량의 폐지방이 버려지고 있다.

2018년 4월 정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폐지방 재활용을 위한 폐기물관리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폐지방을 이용한 의료용 약품 생산 기술을 개발했지만 관련 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이오 벤처기업 도프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인체의 폐지방을 활용해 미용·의약품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 제품을 상용화하지 못했다. 그 후 2020년 1월 ‘바이오헬스 핵심규제 개선방안’에서 정부는 인체 폐지방 재활용을 개선과제로 제시했으며, 지난해 8월부터 실증사업에 착수했다. 올해 초에는 여야에서 모두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내 폐기물관리법은 의료폐기물별 위험을 특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위험의 수용 가능 여부와 위험-편익에 대한 비교 없이 의료폐기물 전체가 일률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4년부터 사망자가 기증한 폐지방 재활용을 허용했으며, 현재 FDA는 폐지방의 산업적 활용을 권장하고 있다. 해외의 선례를 보았을 때 폐지방에 대한 위험 특성화 및 평가가 새롭게 필요하다.

step 4. 관리(Management),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이해관계자, 맥락

위험관리는 위험을 회피, 감소, 이전 또는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와 해결책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의사결정과 결과에 대한 모니터링 및 피드백도 포함한다. 위험관리의 중심에는 이해관계자들 간에 데이터, 정보, 지식을 교환·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과 위험에 관련된 사회·제도·정치·경제적 맥락이 고려돼야 한다.

원격의료 도입과정에서의 이해관계자 대립
원격의료 논의는 수년째 이어져 오고 있지만 이해관계자의 대립에 관련 법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고 있다. 2019년 3월에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을 개정해 도서벽지, 군부대, 원양 선박, 교정시설 등 의약 취약지에 스마트 진료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당시 원격의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과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고려해 스마트진료라는 이름으로 원격의료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산업계와 시민단체의 갈등을 재점화시켰다. 산업계는 점진적 확대가 전제된 중장기 플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시민단체는 의료접근성이 좋은 국내에서 원격진료를 추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비판했다.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
2017년 3월 시판 생리대 대부분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8월에 식약처는 연구결과가 과학적이지 않으며,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생리대 구성 전성분을 포장지에 표기하도록 했다.

식약처의 ‘일회용 생리대 건강영향 조사’를 보면 2014년 이후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생리대 97%에서 화학 발암류 물질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유해물질 함유량이 기준치 이하라 인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비전문가인 대중은 각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결과를 이해하기 어렵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발생하는 왜곡들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어떤 형태로든 안전검증을 하더라도 시장에 유통된 이후에 예측 범위를 벗어난 피해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제품의 시장 출시 이후 사후 모니터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 이유다. 의사결정과 결과에 대한 모니터링과 피드백은 소비자가 위험을 다루는 데 필요한 대안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공동생동 1+3 제한
2018년 고혈압치료제 발사르탄의 원료를 생산하던 중국 기업 화하이의 의약품 제조과정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이 과정에서 발사르탄을 사용한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발사르탄을 원료로 한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며 수백 개의 국내 제약사가 복제약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제네릭 의약품이 난립해 모니터링과 사태 수습이 어려웠다고 주장하며 사태를 계기로 공동생동을 제한하는 ‘위탁공동생동 1+3 법안’을 발의했다. 제네릭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생물학적 동등성시험을 실시한 원제조사와 제조를 맡길 수 있는 회사의 수를 제한하는 제도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이를 과잉규제로 판단했고 발의는 무산됐다.

그러다 지난 3월 바이넥스와 비보존제약이 다른 제약사의 제품을 위탁생산하며 성분을 임의로 변경해 제조하는 사건이 발생해 공동생동 1+3 법안 추진에 다시 힘이 실렸다. 결국 지난 4월 ‘공동생동 1+3’ 약사법 개정안이 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제네릭 의약품 자체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며, 제약업계는 일부 업체의 문제로 전체 제약업체가 매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환자는 이에 따른 예상치 못한 부작용 발생을 우려했다.
<저자 소개>

[김태윤의 정책프리즘] 위험 거버넌스 수립이 바이오의 미래를 정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