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토콘드리아의 막(膜) 지질 산화, 세포예정사 촉발
내막 단백질 '접힘'이 부분적으로 풀리는 게 변수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 연구진, '분자생물학 저널' 논문
'세포 자살' 신호는 어떻게 미토콘드리아에 전달될까

인체 내 세포의 죽음은 아주 정밀하게 제어돼야 한다.

세포가 너무 많이 죽으면 신경 퇴행 질환이 생기고, 반대로 너무 적게 죽으면 암 종양으로 자랄 수 있다.

이렇게 세포 내 프로그램(intracellular program)의 유도로 세포가 죽는 걸 세포예정사(programmed cell death)라고 한다.

세포자멸사(apoptosis)나 세포의 오토파지(autophagy; 자가포식)는 모두 세포예정사의 범주에 든다.

세포예정사를 촉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회복할 수 없는 DNA의 손상이다.

실제로 고열, 과삼투압, 자외선 등의 강한 스트레스는 세포의 자살, 즉 자멸사를 유도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으로 제어되는 세포예정사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가 스스로 죽는 게 그런 경우다.

감염 세포의 죽음은 증식한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에 전염하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 과학자들이 세포예정사를 일으키는 상세한 분자 경로를 밝혀냈다.

미토콘드리아의 내·외막을 구성하는 카르디올리핀(Cardiolipin) 지질과 사이토크롬 C(cytochrome c)라는 작은 단백질의 결합 과정에서 세포예정사가 조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흐로닝언대의 파트릭 판데르벨(Patrick van der Wel) 구조생물학 부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분자생물학 저널(Journal of Molecular Biology)'에 논문으로 실렸다.

판데르벨 교수는 '고체 핵자기 공명 분광법(Solid-State NMR Spectroscopy)'의 전문가이며, 이번 연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이 기술이다.

'세포 자살' 신호는 어떻게 미토콘드리아에 전달될까

8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예정사에 관여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연구에서 새롭게 드러난 건 미토콘드리아에 '세포 자살' 신호가 전달되는 경로와 관련 인자들이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판데르벨 교수는 "미토콘드리아의 막 지질인 카르디올리핀이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라면서 "신호 기능을 하는 카르디올리핀이 막 내부에서 산화되면 세포예정사를 촉발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인지질과 달리 화학적으로 산성을 띠는 카르디올리핀은 미토콘드리아 내막의 전자전달계가 전위차를 이용해 ATP를 생성하는 데 최적화된 구조를 가졌다.

연구팀은 카르디올리핀의 산화를 조절하는 것으로 사이토크롬 C 단백질을 지목했다.

사이토크롬은 원래 미토콘드리아의 전자전달 사슬에서 전자 전달에 관여하는 내막 단백질이다.

그런데 사이토크롬 C가 세포예정사의 초기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게 새로이 밝혀졌다.

과거엔 세포막에서 사이토크롬 C의 접힘이 펼쳐지면 카르디올리핀이 산화하는 것으로 봤다.

그런데 판데르벨 교수팀은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자들과 공동 수행한 선행 연구에서 사이토크롬 C가 항상 펼쳐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고체 NMR 분광법으로 사이토크롬 C를 구성하는 105개 아미노산의 위치와 연결 상태 등을 모두 확인했다.

고체 NMR 분광법을 쓰면 단백질 구조 내에서 고정된 위치의 아미노산만 식별돼,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접힌 부분과 펼쳐진 부분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팀은 이런 시험과 분석을 거쳐 사이토크롬 C가 카르디올리핀과 결합할 때 완전히 펼쳐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포 자살' 신호는 어떻게 미토콘드리아에 전달될까
단백질은 저마다 특별한 순서에 따라 접힌다.

첫 번째가 두 번째를, 두 번째가 세 번째를 유도하는 식으로 순차적 접힘이 이뤄지는데 이 각 단계를 '폴던(foldon)'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이토크롬 C는 단계별로 다른 폴던이 펼쳐지고, 어떤 부분은 전혀 펼쳐지지 않기도 했다.

이 발견은 제약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흥미로운 실마리가 될 거로 보인다.

특정 단백질에서 어떤 부분이 펼쳐져 있는지 안다는 건 그 부분에 작용하는 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효과를 내는 약은 세포예정사를 확대 또는 축소 조절하는 데도 쓸 수 있다.

판데르빌 교수는 "이번 연구 데이터로 단백질 상호작용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컴퓨터 모델을 구축해 먼저 가상 환경에서 약을 디자인해 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