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Overview] 프로탁은 신약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수 있을까
프로탁(PROTAC·PROteolysis TArgeting Chimera)은 저분자 화합물을 이용하여 세포 내 표적단백질을 인 공적 및 선택적으로 분해하는 기술로서 기존의 저분자 약물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약물작동방식이다.

프로탁은 세포 내 단백질 분해 기전인 유비 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UPS·Ubiquitin-Proteasome System)를 차용하여 표적단백질을 분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표적단백질의 기능을 제어한다.

2001년 초기 개념 정립 연구결과가 발표된 후 현재는 새로운 기전의 신약 개발 기술로 인식되어 학계와 제약업계에서 이를 활용한 신약 개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최근 내성암 원인 단백질을 표적으로 한 프로탁 물질이 임상단계에 진입하여 그 유효성을 검증 중이다.

프로탁은 UPS를 활용해 단백질을 분해한다. 세포는 손상되거나 불필요한 단백질을 제거하기 위해 UPS와 오토파지-리소좀 경로(ALP·Autophagy-Lysosome pathway)를 가지고 있다. 세포 내 단백질의 약 80% 이상은 UPS에 의해 분해되며, ALP는 단백질뿐 만 아니라 단백질 응집체, 세포소기관 및 박테리아 등도 분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시스템을 엄격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진화적으로 보존된 76개의 아미노산이 유비퀴틴이다. 분해할 단백질을 표지한다. 일단 단백질이 유비퀴틴으로 표지되면, 단백질은 6개의 단백질 분해 사이트를 가진 단백질 복합체인 26S 프로테아좀에 의해서 인식된 후 분해될 수 있다.

단백질의 유비쿼틴화는 E1, E2, E3라는 이름의 효소에 의해 수행된다. E1 효소는 ATP를 사용하여 유비퀴틴 C-말단을 아데닐화함으로써 유비퀴틴을 활성화한다. 활성화된 유비퀴틴 티오에스터가 형성되면, 유비퀴틴은 티오에스테르화 과정을 통해 E2 효소에 결합된다.

다음으로 E2 효소는 E3 리가아제와 결합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기질 어댑터와 부단백질로 구성된 큰 단백질 복합체다. E3 리 가아제의 종류에 따라 유비퀴틴은 E2에서 기질단백질 표면의 리신(Lys)으로 직접 전달되거나 E2에서 E3로, 그리고 기질단백질로 순차적으로 전달된다.
유비퀴틴 자체에는 7개의 리신 잔기가 포함되어 있어 E3 리가아제에 의해 반복적으로 유비퀴틴 사슬을 형성할 수 있다. 48번 리신에 연결된 다중유비 퀴틴으로 표지된 단백질은 26S 프로테아좀에 의해 인식되고 분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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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프로탁부터 현재의 프로탁까지
분자는 화학적으로 표적단백질에 결합하는 리간드(워헤드), 링커, 그리고 E3 리가아제 리간드(바인더)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링커는 두 리간드가 작동하여 다중 유비퀴틴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적절한 길이로 설계된다. 프로탁은 하나의 물질이 두 개의 다른 단백질과 동시에 결합함으로써 기능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종-이중기능성 (hetero-bifunctional) 화합물이라고 한다.

프로탁과 같은 개념의 분자에 대한 최초의 설명은 미국 생명공학 회사인 프로티닉스의 두 과학자가 1999년에 제출한 특허(US6306663B1)에 나타나 있다. 이 특허의 청구항에는 “표적단백질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표적단백질 결합 요소와 유비퀴틴화 인식 요소가 공유결합으로 연결된, 표적단백질의 유비퀴틴화를 활성화하는 물질을 도출하는 방법”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특허에서 제시한 기술은 개념적으로 프로탁 기술과 일치하지만, 연구진은 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는 수행하지 않았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레이 데샤이 데스 교수팀과 예일대의 크레이그 크루 교수팀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공동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데, 이 논문에서 최초로 ‘프로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프로탁 기술을 적용하여 표적단백질 분해가 가능하다는 개념정립(POC)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이 연구에서 합성된 이종-이중 기능성 화합물을 ‘protein-targeting chimeric molecule 1(PROTAC-1)’로 명명했 다. 이후 프로탁-1 화합물의 명칭으로부터 프로탁이라는 기술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POC를 위하여 표적단백질을 암 관련 단백질인 ‘methionine aminopeptidase-2(MetAP-2)’로 선정하였으며, E3 리가아제로는 ‘Skp1–Cullin–F box complex(SCF)’가 선정되었다.

MetAP- 2 리간드로 저분자 저해제인 ‘ovalicinol’, SCF 리간드로 펩타이드인 ‘Iκ-B α-phosphop eptide’, 그리고 링커로는 ‘suberate-glycine’을 사용하여 최초의 프로탁 물질인 ‘프로탁-1’을 합성했다. 프로탁-1은 제노푸스 난모세포에서 MetAP-2 단백질을 성공적으로 분해했다.

초기 프로탁의 POC 연구에서는 프로탁-1이 인간 세포에서는 우수한 효능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E3 리가아제 리간드로 펩타이드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세포 투과도가 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작동기작의 약물 개발에 대한 가능성이 최초로 확인됐다.

프로탁이 실제 약물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두 개의 리간드를 펩타이드가 아닌 저분자로 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008년 크루 교수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최초의 프로탁을 개발했다. 모든 리간드가 저분자로 구성된 프로탁이다. 이 연구에서 표적단백질은 남성호르몬 수용체(AR·Androgen Receptor), 그리고 E3 리가아제는 MDM2가 채택됐다.

특히 MDM2-p53 양성자 펌프 억제제 (PPI·Proton-Pump Inhibitors)인 저분자 뉴틀린을 MDM2에 대한 리간드로 사용했다. 최초의 저분자 프로탁은 AR을 성공적으로 분해했다.

이후 프로탁 연구자들의 주된 관심은 미충족 의료 수요가 있는 표적단백질을 선정하고, 저분자 E3 리가아제 리간드를 개발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현재 인간이 가진 600종 이상의 E3 리가아제 중 일부는 항암제 개발을 위한 주요 표적이다. 때문에 이미 리가아제를 표적으로한 저분자 저해제 발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이 연구를 프로탁 기술에 적용해 E3 리가아제 저분자 리간드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2010년에는 ‘cIAP-1’ E3 리가아제의 리간드로 ‘베스타틴’이 도입된 ‘CRABPII-targeting cIAP-based 프로탁’이 발표되었다. 뒤이어 크루 교수팀은 VHL E3 리가아제 최적화 연구를 통해 저분자 수준의 리간드를 도출하고 2015년부터 프로탁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 히로시 한다 일본 도쿄공업대 교수팀은 탈리도마이드의 주요한 표적단백질이 CRBN에 결합한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최초로 발표했다.

2014년 벤저민 에버트 미국 브리함 우먼스 병원 교수팀은 프탈이미드(레날도마이드, 탈리도마이드, 포말리도마이드)가 CRBN에 결합함으로써 림프계 전사인자인 이카로스족의 아연 핑거 1(IKZF1)과 IKZF3의 저하를 유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발성 골수종치료제인 레날도마이드의 분자기전을 밝힌 것이다.

이 연구로 프탈이미드는 프로탁의 E3 리가 아제의 유용한 리간드로 사용됐다. 프로탁 관점에서 CRBN 리간드의 가장 큰 장점은 분자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프로탁은 ‘표적단백질 리간드-링커-E3 리가아제 리간드’로 구성되어 있어 분자량 1000달톤 내외다. 분자량이 큰 리간드가 도입될 경우 1200달톤 이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약물 개발 시 최적화 단계에서 큰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CRBN 리간드는 분자량이 상대적으로 작고, 합성도 비교적 용이해 현재 가장 널리 이용되는 프로탁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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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는 왜 프로탁에 집중하는가
새롭고 유망한 기술로서, 프로탁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큰 가능성을 가진다.

첫째, 프로탁은 약물에 내성을 가진 표적단백질에 대해서 특히 잘 반응한다. 화학요법은 전통적으로 암치료의 주요한 치료법이었다. 하지만 화학요법에 사용되는 약물은 환자의 내성을 불러일으키고, 암의 재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약물 내성은 최근 연구들, 특히 암 연구에 있어서 매우 어려운 문제다. 암의 내성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개 발하는 것은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프로탁은 표적단백질을 제거해 효소 활성과 비효소적 기능을 포함한 대상의 전체 기능을 없애는 것으로 단백질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재의 저분자 치료제가 직면하는 잠재적 내성을 해결할 수 있다. 또 프로탁은 촉매처럼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낮은 용량만 투여해도 된다. 그만큼 표적단백질의 돌연변이에 덜 취약하다.

둘째, 프로탁은 약물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던 표적단백질의 접근이 가능하다. 현재 효소, GPCR, 핵 호르몬 수용체, 이온 채널을 포함한 전체 단백질 중 20~25%에 대해서만 후보물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나머지 단백질은 아직 약물 개발로 적절한지 연구되지 않았다.
새로운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이러한 잠재적 약물 표적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프로탁은 표적단백질을 분해 하는 고유한 작용기작을 가지기 때문에 연구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셋째, 프로탁은 표적단백질을 분해함으로써 표적단백질의 비활성 부위를 제어할 수 있다. 전통적인 저분자 약물은 일반적으로 표적의 활성 부위에 달라붙어 기능을 저해시킨다. 프로탁은 비활성 부위에 결합해도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표적 공간을 확장하고 기존의 저분자 저해제에 의해 쉽게 제어되지 않았던 단백질을 제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연구결과, 프로탁은 저해제와 비교해 더 높은 표적 선택성을 나타낸다. 항암제 ‘이브루티닙’은 브루톤 티로신 키나아제(BTK) 동족체인 BTK, ITK, TEC에 모두 결합을 하는 반면, 이브루티닙을 리간드로 사용하는 프로탁은 오직 BTK만 분해한다.

프로탁은 다른 연구 분야에 광범위한 응용 이 가능한 새로운 기술이 될 수 있다. 연구자들은 IRA K4, 시르투인(Sir tuin), PCA F/GCN5를 대상으로 면역질환 치료제의 개발에 프로탁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과 신경퇴행성 질환에 대해서도 각각 NS3/4A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프로탁이 합성되어 분해능을 보임으로써 질 환 제어 가능성을 보였다.

삼중 복합체만 ‘형성’되면 분해되는 기적
기존 약물의 대표적인 작용기전은 질병을 일으키는 또는 질병을 조절할 수 있는 인체 내 특정한 단백질과 결합해 그 기능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단백질을 약물의 표적단백질이라 하며, 약물이 표적단백질의 기능을 제어하는 방식은 약물과 표적단백질이 일정 이상의 친화력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약물이 단백질에 결합하고, 얼마나 단백질에 많이 결합했느냐(점유했느냐)에 비례해 단백질의 기능을 저해시키거나 때로는 활성화시킨다. 결과적으로 세포 내 신호전달이나 필요한 물질의 합성에 영향을 줌으로써 치료 효능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해열 진통제인 이부프로펜은 표적단백질인 고리형 산소화효소(cyclo oxygenase)에 결합함으로써 효소의 기능을 저해해 결과적으로 프로스타그란딘의 합성을 막고 이를 통해 약리 효능을 낸다.

프로탁 기술은 ‘발생 주도형(event-driven)’ 약리를 통해 작용하기 때문에 기존 ‘점유 주도형(occupancy-driven)’ 약리와 관련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 기존의 약물이 친화력에 비례하여 활성을 나타내는 것에 비해 프로탁의 활성은 프로탁이 생물학적 사건, 즉 유비퀴틴화를 일으키는 능력에 비례한다. 프로탁의 유비퀴틴화 유도 능력은 일시적인 ‘E3 리가아제-프로탁-표적단백질’ 삼중 복합체 형성에 달려 있다.

프로탁은 표적단백질의 유비퀴틴화에 필요한 정도로만 삼중 복합체를 유지하면 프로탁 결합과 관계없이 표적의 분해가 진행된다. 분리된 프로탁은 남아 있는 표적 단백질과 추가적인 삼중 복합체를 형성해 여러 번의 분해 과정을 유도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프로탁이 표적단백질과의 결합력은 약하더라도 E3 리가아제와 함께 삼중 복합체 형성 시 안정한 경우 강력한 분해 효능을 나타낼 수 있다. 현재까지 60개 이상의 표적단백질에 대해 프로탁이 성공적으로 개발되었다. 이 중 두 가지 화합물은 전립선과 유방암을 치료하기 위해 현재 임상 실험 중이다.

아직 프로탁에 적용된 표적단백질 수와 프로탁 임상 후보의 수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프로탁이 임상적으로 충분히 유용할지는 완전히 검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항암제 및 뇌질환 치료제 개발의 관점에서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프로탁 기반 기술적 측면에서 600개 이상의 E3 리가아제 중에서 더욱 많은 수의 E3 리가아제가 프로탁에 이용되고 더불어 조직선택적으로 발현되는 E3 리가아제가 이용된다면 프로탁의 실현가능성, 유용성 및 선택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신약으로서의 가능성도 더욱 밝게 할 것이다.
[Cover Story - Overview] 프로탁은 신약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저자 소개>

[Cover Story - Overview] 프로탁은 신약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신동윤

서울대학교 약대를 졸업하고 약품제조화학전공으로 동대학원에서 2001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미국 보스턴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2011년부터 가천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가천약학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항암, 면역질환, 대사성질환 등에 대한 저분자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2020년 교육부 대학중점연구소 사업에 선정되어 책임자로서 단배질 분해 기전 신약 개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