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증은 신생아 400~800만 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하며 치명적인 유전질환이다.
조로증은 신생아 400~800만 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하며 치명적인 유전질환이다.
조로증(progeria)을 아는가. 2003년 개봉한 영화 <오! 브라더스>에서 배우 이범수가 조로 증에 걸린 12세 소년을 심도 있게 연기하면서 좀 알려졌다.

progeria때이르게 늙은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 조로증의 정식 명칭은 이 질병을 최초로 보고한 영국 의사의 이름을 붙여 허친슨-길포드 조로증후군(HGPS·Hutchinson-Gilford Progeria Syndrome)으로 부른다. 어린이가 빠른 속도로 노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략 신생아 400만~800만 명 중 한 명꼴로 유전자 LMNA(Lamin A)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매우 희귀하며 치명적인 유전질환이다.

이 병은 생후 9~24개월이 되면 심각한 성장 지연을 보이며, 특징적인 얼굴형을 갖는다. 조로증을 가진 아이들은 죽상 경화증(심장질환 또는 심장발작)으로 대략 8세에서 21세의 범위, 평균 14세에 사망한다. 전 세계에서 250명 정도의 아이들이 조로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에도 소아 조로증 환자가 1명 있다.


대한민국은 2017년 제정된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전국적으로 2만 명 미만인 환자의 질환(약 1만 명당 3.9건)을 희귀질환으로 정의한다. 그러면 나라 안에 환자가 1명 있다고 알려진 조로증은 초희귀질환이다. 초초초 초가 세 번쯤은 붙는 희귀질환이다. 누가 이런 초희귀질환에 자본을 투자하고 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거의 불가능하다. 불가능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그 기적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조로증의 원인, 라민 A 단백질 막는 파르네실전달효소 저해제

지난해 11월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조로증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조킨비(Zokinvy·성분명 로나파닙)의 승인을 발표했다. 미국 아이거 바이오파마슈티컬스의 조킨비는 경구용 파르네실전달효소 저해제 (FTI·Farnesyl Transferase Inhibitor)다. 지금까지 조로증을 치료하는 약은 합병증을 치료하는 보조적 치료가 유일했다.

임상을 지휘한 브라운대학소아과 레슬리 고든 교수는
조킨비는 치료약은 아니지만 이를 복용하면 수명이 평균 2.5년 길어진다는 임상결과를 얻었다평균 수명이 20년도 안 되는 조로증 환자들에게 2.5년은 긴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레슬리는 자기 아들이 바로 조로증 환자이기에 조로증 연구재단(PR F·Progeria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하고 유전자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 치료제 탐색과 임상까지 관여했다.

어떻게 조로증이 생기는가. 먼저 라민 A의 돌연변이로 인한 허친슨-길포드 조로증후군 재발 원인이란 제목의 논문이 2003년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HGPS 유전자는 당시 미국 국립보건원(NIH) 원장이던 프란시스 콜린스의 연구그룹에서 발견했다.

LMNA 유전자는 세포의 핵을 지탱하는 구조적 발판인 라민 A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결함을 가진 라민 A 단백질이 핵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조로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노화를 겪고 있는 일반인은 생물학적으로는 동일해 우리 모두는 조로증의 질병 유발 단백질인 프로게린(progerin)을 조금씩 생성한다. 다른 점은 조로증을 가진 아이들은 라민 A 단백질의 유전변화로 프로게린이 체내에 쌓이며, 이런 세포의 불안정성이 HGPS에서의 때이른 노화과정으로 연결된다.

파르네실전달효소(farnesyltransferase)는 단백질에 프레닐기가 전달되는 프레닐화(prenylation) 과정에서 단백질 변형에 관여하는 효소다.

2005년 8월부터 2006년 2월 사이에 노스캐 롤라이나대학(UNC)의 채닝 데르 박사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의 스티브 영 교수 그룹들이 조로증을 가진 아이들의 피부 세포에서 떼어낸 샘플에 FTI를 처리하면 일반적인 세포와 비슷하게 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성숙한 라민 A 단백질이 되기 위해 파르네실 그룹이 단백질에 붙은 후에 몇몇 과정을 거쳐 펩티다아제에 의해 잘려 정상적인 72KDa 라민 A가 만들어진다. HGPS에서는 라민 A 단백질이 잘리는 부분을 포함해 50개의 아미노산이 결실돼 있다. 같은 파르네실 프로세싱을 통해 기형의 67KDa 라민 A가 만들어지는데 잘리지 않으니 파르네실 그룹이 단백질에 붙어있다. 연구자들이 착안한 것은 파르네실전달효소 저해제인 FTI를 처리하면 완전하게 정상적이진 않지만 67KDa 라민 A가 만들어지면서 파르네실 그룹 없이 72KDa 라민 A와 사이즈만 다르고 비슷한 구조가 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PRF에서는 HGPS 어린이들에게 당시 셰링-플라우(S-P
·Schering -Plough)의 FTI인 로나파닙(lonafarnib)을 투여하자고 회사에 제안했다. 로나파닙의 다른 이점은 이미 임상 2상을 통해 어린이 암환자에게 투여한 경험이 있고 안전성 용량을 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필자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인 2007년 5월 7일부터 조로증 어린이들에게 역사적인 투여가 시작됐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항상 임상 결과에 관심이 있었다.


파르네실전달효소 저해제가 임상 초기 실패했던 이유는

2018년 2월 22일 S-P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밥 비숍의 생일을 축하하는 대신 조로증을 가진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페이스북을 매체로 PRF에 기부한 경험도 있다. 왜 밥과 필자가 PRF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있을까.

그 시작은 1989년 분자약리학(Molecular Pharmacology)이란 작은 팀이 S-P에 만들어지면서 팀을 시작하는 동료가 되어 같이 오래 일한 덕분이다. S-P에는 젠타마이신(gentamicin)을 발견하고 약으로 만든 미생 물학이라는 오래된 부서가 당시 혁신이 필요하자 그 밑에 회사 전체의 스크리닝센터를 만들고 고속 약물 민감성 스크리닝(High Thruput Screen)을 지원하는 4명의 박사로 구성된 분자약리학 팀이 생겼다.

필자와 밥은 팀의 가장 처음 스크린으로 FT 스크린을 만들었다. 이미 MSD는 라스(RAS) 유전자를 발견한 스콜닉 박사가 연구소장이었다. 따라서 연구를 시작한지 몇 년이 됐고 FT스크린의 특허(IP)는 존슨앤드존슨(J&J)에서 이미 등록했던 상황이었다.

우리는 시작부터 이미 개발 후발주자였지만 FTI에 힘을 쏟았다. 그 당시는 라이브러리로 비축한 S-P 화합물을 모두 스크리닝하지 않고 대표적인 화합물로 선별된 24개의 플레이트(한 플레이트당 96개 화합물)를 수작업으로 했다.

처음 스크리닝에 걸린 화합물이 SCH44342이다. 그 화합물은 아직도 알레르기성 비염 치료제로 잘 팔리는 클라리틴을 개발할 때 만들어진 클라리틴 구조의 화합물이다. 번호에서 추측하듯이 1만 개에 가까운 여러 유도체를 만들어서 SCH56582를 거쳐 최종 후보 물질 SCH66336(로나파닙)이 만들어졌다. 다른 경쟁 약물에 비해 물성도 좋고 부작용이 적으며 경구 투여도 가능한 좋은 약물이었다.

1999년에 하루에 두 번씩 경구 투여로 임상 1상에 들어가서 임상 2상에서의 투여도 1일 2회로 추천됐다. 그 후에 계속되는 임상 2상과 다른 항암제와의 병용투여를 했지만 긍정적인 임상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 1997년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파르네실 단백질 억제제로 처리된 세포에서 K-Ras와 N-Ras 단백질의 제라닐제라닐화가 다시 주목받고 약을 투여했을 때 이런 프레닐화 대체(alternative prenylation)가 긍정적이지 못한 임상 결과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달리는 임상 기차를 막지는 못했다.

2018년 4월 24일 출간된 <미국의사협회저널 (JAMA)>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임상시험에서 27명의 조로증 어린이들(150㎎/㎡)이 FTI 인 로나파닙을 하루에 두 번씩 경구 투여를 받았다. 이 임상시험의 대조군은 비슷한 나이, 성별과 같은 대륙에 사는 조로증 어린이들이다. 로나파닙을 투여 받은 어린이들을 평균 2.5년간 추적한 결과, 카플란-마이어 생존 분석법(Kaplan-Meier)의 생존 커브를 보면 대조군에 비해 현저히 낮은 치사율(mortality rate, 3.7% vs. 33.3%)을 보였다.
아이거 바이오파마슈티컬스의 조킨비는 프로게린 단백질 형성을 억제해 조로증 환자의 수명을 2.5년가량 늘려준다.
아이거 바이오파마슈티컬스의 조킨비는 프로게린 단백질 형성을 억제해 조로증 환자의 수명을 2.5년가량 늘려준다.
MSD에서 개발 권리 넘겨 받은 아이거, 결국 로나파닙 임상에 성공

이번 FDA 허가를 위한 임상 연구팀은 62명의 조로증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군과 비치료군으로 나눠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조킨비로 치료받은 군은 첫 3년간 치료하면서 평균 3개월 수명이 증가했다.

또 추적 관찰 기간 11년 동안 평균 2.5년의 수명이 연장됐다. 임상시험 중 나타난 부작용은 오심과 구토, 설사, 감염, 피로, 식욕감소 등이었다. 또 조킨비를 복용한 일부 환자에게서 혈중 나트륨과 칼슘에 이상이 발생했고, 또 백혈구 수치가 낮아지거나 간 수치가 증가했다. 조킨비는 클래리트로마이신, 이트라코나졸 등과 같은 CYP3A 저해제, 미다졸람, 콜레스테롤 저하제와 같이 사용하면 안 된다. 따라서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왜 S-P를 합병한 MSD가 아니고 아이거가 사용허가 신청인이 되었는가. 2015년 4월 20일 아이거 바이오파마슈티컬스는 D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의 치료제이자 당사의 대표제품인 로나파닙·리토나비어의 콤비네이션이 FDA로부터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만큼 아이거는 로나파닙을 상품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MSD는 오래전에 개발 중단을 선언하고 개발 권리를 아이거에게 넘겼다.

K-Ras라는 타깃을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개발하는 바이오텍의 대표가 신약 개발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들이고 실패한 타깃이 FTI다라고 규정하는 슬라이드를 만들어 필자에게 공유했다. 여러 빅파마가 경쟁적으로 항암제로 오랫동안 연구하고 임상을 진행했던 만큼 숫자적으로 실패한 타깃이기에 그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2020년 FDA의 승인 발표 이후에는 돈으로 계산이 안 되는 가장 위대한 신약 개발 투자 이야기가 된 것이다.

전 세계 250여 명의 HGPS 어린이들이 FTI를 복용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더 살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 로나파닙를 위해 가장 근본적인 스크린을 만들고 왜 K-Ras, N-Ras에서 약리 작용이 잘 안되는지 프레닐화 대체를 밝힌 연구자로서 지난 30년 세월이 강의의 슬라이드처럼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배진건의 바이오 산책] 돈으로 계산이 안 되는데 조로증 약이 FDA 허가를 받았다
배진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8년 JW중외제약에서 연구총괄 전무를 지냈고 C&C신약연구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아브노바 연구소장과 한독 상임고문을 거쳐 현재 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이자 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을 맡고 있다. 국내외 신약 개발 분야의 석학으로, 저서로는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Back to BASIC)>이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