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업종은 단연 지난해 국내 주식 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는 수익률로도 확인된다. 에프엔가이드 산업분류 기준(WICS)으로 건강관리지수는 작년 12월 24일 기준으로 연초 대비 81% 급등하며 시장수익률 32%를 크게 넘어섰다. 이러한 배경에는 안정적인 실적과 코로나19 관련 연구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의약품은 필수소비재로 경기에 둔감해 제약업종은 경기방어주로 분류된다.

실제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실적이 악화된 다른 업종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수탁생산(CMO), 진단 업체들은 호실적을 발표했다. 또 코로나19 팬더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단, 치료제, 백신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지원책과 규제 완화가 동반됨에 따라 코로나19 연구개발 기대감은 커졌다. 지난해 제약·바이오 업종의 주가 급등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이를 반영하듯 제약·바이오 업종 내에서도 주요 코로나19 관련 종목들의 상승률이 업종지수를 크게 웃돌았다. 지난달 24일을 기준으로 코로나19 관련 업체인 씨젠, SK케미칼, 신풍제약의 지난해 수익률은 각각 503%, 488%, 1544%에 달한다.
[바이오 투자 전망] 변곡점에 선 제약·바이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고속 작전(OWS·Operation Warp Speed)’을 통해 빠르게 이뤄진 백신 개발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현재까지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가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화이자는 95%, 모더나는 94.5%, 아스트라제네카는 70%의 유효성을 보이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제시한 최소 기준인 50%를 크게 상회했다. 이를 바탕으로 화이자와 모더나는 지난달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존슨앤드존슨(J&J) 역시 임상 3상 환자 모집을 완료했으며, 이달 말 결과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 기준은 바이러스의 재생산지수에 따라 달라진다. 홍역의 경우 95%가 접종을 받아야 집단면역의 효과가 발생하며, 소아마비의 경우 80%다. 코로나19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65~70% 정도의 접종이 이뤄져야 집단면역 효과가 발휘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65~70%가 접종을 받는 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고려했을 때, 미국의 경우 내년 여름에 집단면역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은 각각 16세 이상,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인구의 약 20% 수준인 소아·청소년의 접종은 승인되지 않았다. 안전성과 면역 지속 기간 확인을 위한 추가적인 관찰도 필요하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긴급사용승인의 요건인 절반의 환자에게서의 2개월 추적 데이터를 확인했다. 그러나 백신을 통한 보호 기간이 언제까지 유지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이 이뤄져야 한다. 인플루엔자 백신의 경우 4~6개월 만에 면역 반응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적이 확인되는 코로나19 수혜 업체와 연구개발 바이오텍에 주목

작년에는 코로나19 수혜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으로 주가가 움직이는 흐름을 보였다. 올해도 일부 코로나19 수혜 업체 위주의 주가 흐름을 보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코로나19를 통한 이익의 추정이 어려웠던 지난해 상황과 달리 올해부터는 글로벌 백신 업체, 국내 백신 CMO 등 코로나19 수혜 업체들의 실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수혜의 가시화에 따라 모호한 기대감의 반영은 어려워지고,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이 전망되는 업체 위주의 주가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 또 코로나19 관련 연구개발(R&D) 기대감은 작년 대비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1월 WHO 기준으로 2704건의(연구자 임상 제외)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이 진행 중이다. 이 중 1711건이 임상 2상 이하 단계로 임상 3상의 허들을 앞둔 상황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작에 따라 환자 모집이 어려워질 수 있으며, 올해 코로나19 관련 임상은 지난해 대비 진행 속도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팬데믹이 조절 가능하고 물리적 시간의 문제라고 인식되면, 코로나19 관련 불확실성은 다소 해소되고 시장은 포스트 코로나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서 제약·바이오 업종에서 반전될 부분은 연구개발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기존 파이프라인의 임상시험은 지연되고 신규 임상시험은 감소했다. 규제기관들은 임상시험을 새로 시작하거나 기존 임상시험에서 새로운 환자를 모집할 때 규제기관과 협의해 결정했던 시험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이미 진행 중인 임상시험도 가능하면 일시적으로 정지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지난해 1~7월까지 임상시험 추이를 보면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임상을 제외한 신규 임상시험은 클리니컬트라이얼즈 기준으로 코로나가 정점에 이르렀던 4, 5월에 각각 1308건과 1443건으로 급감했다. 1000건 이상의 임상시험이 중단된 것이 확인된다.

의약품 승인 전 이뤄져야 하는 공장 실사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미약품의 롤론티스는 기존 전문의약품허가신청자비용부담법(PDUFA) 기한인 작년 10월 24일 내에 실사가 이뤄지지 못해 허가가 밀렸으며, BMS의 CD19 CAR-T 파이프라인 리소셀도 코로나로 인한 실사의 어려움으로 PDUFA 기한인 2020년 11월 16일까지 승인 여부가 결정되지 못했다. 바이오텍들이 임상 결과를 발표하며 주요 업체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학회 역시 연기되거나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온라인으로 개최될 경우, 구두 발표가 아닌 포스터를 통한 발표일 경우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게 된다.

미리 보는 내년 R&D 키워드

①알츠하이머
바이오젠·에자이의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 아두카누맙의 운명이 PDUFA 기일인 오는 3월 7일을 기점으로 결정된다. 아두카누맙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연관성이 높다고 알려진 아밀로이드베타의 항체로 아밀로이드베타 올리고머에 결합해 응집체 형성을 방지하는 기전의 약물이다. 현재까지 FDA에 허가된 알츠하이머성 치매 의약품은 총 6종 뿐이다. 신약은 5종이며 개량신약(기존 치료제의 복합제)이 1종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에서는 2003년 승인된 엘러간의 나멘다가 마지막 신약이며, 이마저도 실제 알츠하이머의 증상을 완화하거나 진행을 소폭 지연시키는 수준으로 미충족 수요가 매우 큰 상황이다.

작년 11월 6일 FDA 자문위원회는 아두카누맙의 승인과 관련해 최종적으로 승인 반대를 권고했다. 같은 달 4일 FDA가 자문위 회의를 위해 발간한 자료에서 아두카누맙의 임상 3상(EMERGE)의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힌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FDA는 자문위의 권고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의무 사항은 아니며 아두카누맙의 승인 가능성은 남아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자문위와 FDA의 결정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자문위에서 부정적 권고 사항을 밝힌 사례는 총 110건이다. 이 중 FDA에서 긍정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22건으로, 자문위의 부정적 의견 중 19%를 FDA가 뒤집었다. 사렙타의 '비욘디스53'의 경우 FDA로부터 최종보완요구공문(CRL)을 수령하며 신약 허가가 연기됐으나, 이후 가속 승인(시판 후 확인 시험을 통해 이점을 증명해야 최종 승인)을 받았다. FDA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아두카누맙의 승인은 정체돼 있는 중추신경계(CNS) 의약품 R&D에 적잖은 의미가 될 수 있다. 중추신경계 분야의 R&D 투자는 정체 상태다. 2016년에서 2019년까지 제약·바이오 관련 기술이전 총 금액은 연평균 9.1% 증가했다. 이 중 항암제 관련 거래는 연평균 15.2% 늘어난 데 반해, 중추신경계 분야는 오히려 연평균 1.1% 감소했다.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뿐 아니라 자체 연구도 축소되고 있다. 화이자는 2018년 중추신경계 분야 R&D를 구조조정했으며, 암젠 역시 2019년 자체 신경과학 연구개발을 중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두카누맙의 승인은 빅파마들의 CNS 분야에서의 R&D 투자 확대를 이끌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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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면역항암제
키트루다로 대표되는 면역관문억제제는 인체의 면역세포가 암을 제거하는 과정을 촉진하는 기전의 항암제다. 지난해 면역관문억제제의 매출은 약 300억 달러(약 33조 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기존 표적항암제와 달리 다양한 암종에 적용 가능하며, 장기 생존률을 높이고 암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시킨다는 강점을 바탕으로 항암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FDA에 승인된 면역관문억제제는 총 7개로 면역관문억제제간의 경쟁은 치열하다. 이러한 경쟁 상황을 느낄 수 있는 이슈가 작년 11월에 MSD가 발표한 ‘KEYNOTE-598 study’다. MSD는 PD-L1 발현율이 50% 이상인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키트루다와 여보이의 병용 임상 3상(KEYNOTE-598)에서 병용 투여군이 키트루다 대조군 대비 전체생존율(OS), 무진행생존기간(PFSl)에서 대조군 대비 유의미한 개선을 보이지 못했고 이상 반응은 더 높은 빈도로 발생했다고 발표하며 여보이를 직접적으로 공격했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의 현실적인 전략은 병용을 통한 메인 플레이어들과의 협력이 될 수 있다. 기존의 PD-1 및 PD-L1 면역관문억제제는 PD-L1이 발현되고, 면역세포의 침윤이 이루어진 ‘Hot Tumor’에서 잘 작용한다. 면역세포가 침윤하지 않은 위암, 대장암, 췌장암 등의 ‘Cold Tumor’에서는 반응률이 매우 낮다. 이러한 미충족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첫번째 접근이 병용투여다. 실제 2017년 기준 약 1100건에 불과했던 면역관문억제제 병용 임상은 2019년 11월 기준 약 2250건, 지난해 9월 기준 2900건으로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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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자가면역질환
올해는 항체 자가면역질환 분야의 흐름을 바꿀 Anti FcRn 제제의 최초 FDA 승인이 전망된다. Anti FcRn 분야에서 가장 앞선 플레이어인 알제넥스는 Anti FcRn 파이프라인 에프가티지모드의 중증근무력증(MG) 임상 3상의 성공적인 톱라인을 발표했으며, 연초 허가 신청과 2021년 승인이 전망된다.

자가면역질환 중 항체 매개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체내 자신의 물질에 대한 항체의 형성으로 발생한다. 어떤 자가 항체가 생기느냐에 따라 전신 홍반성 낭창(루푸스), 중증근무력증, 다발성경화증(MS)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FcRn은 상피세포에 존재하는 수용체다. ‘FcRn 리사이클링’이라는 기전을 통해 혈장의 IgG와 알부민을 세포 안으로 흡수한 후 다시 세포 밖으로 방출한다.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되는 자가 항체의 75%가 IgG다. 이 때문에 자가면역질환의 조절을 위해서는 IgG의 감소가 핵심이다. 현재 항체 매개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를 사용한다.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게는 IgG를 투여해 병리적 자가 항체를 희석하는 면역글로불린(IVIG) 고용량 요법과 혈액을 체외로 빼내 IgG를 여과 후 다시 주입하는 혈장분리교환법이 사용되고 있다. 기존 방법들은 비싸고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러한 자가면역질환의 미충족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Anti FcRn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는 Anti FcRn 기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J&J의 모멘타 파마슈티컬 인수다. J&J는 작년 8월 Anti-FcRn 기전의 ‘M281’을 개발하는 모멘타를 65억 달러(약 7조 원)에 인수했다.
[바이오 투자 전망] 변곡점에 선 제약·바이오
박재경

숙명여대 약학대학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약국과 제약회사 개발부에 근무했다. 현재 DB금융투자에서 제약·바이오 업종을 담당하고 있다. 실무 경험을 녹인 신선한 리서치를 지향하며 늘 배우는 자세로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