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이오 업계에 하나 둘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 치료제는 의약품과 정보기술(IT)의 합작품이다. 이 때문에 의약품과 IT의 개발 과정은 물론 업계의 특성까지 속속들이 파악해야 성공적인 디지털 치료제가 탄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어떤 점이 고려돼야 하는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명명한 디지털 치료제의 정식 명칭은 ‘디지털 치료기기’다. 다만 해당 칼럼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많이 통용되고 있는 디지털 치료제로 표기한다.

지난 10년간 바이오 업계와 정보기술(IT) 업계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바이오 업계는 기존 합성의 약품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약물을 쏟아냈고, IT 업계는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필두로 각종 신기술이 개발됐다. 디지털 치료제(DTx·Digital Therapeutics)는 바이오에 IT가 접목돼 만들어진 ‘혼종’이다.

승부처 1- 의약품의 빈자리를 IT로 메울 것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8월에 발표한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여기서 눈에 띄는건 ‘의학적 질병’과 ‘근거 기반’이라는 단어다.

디지털 치료제가 되려면 국제질병분류에 따라 질병으로 분류되는 질환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IT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임상시험이나 학술지 논문 등 검증을 거친 자료를 토대로 의학적인 효능이 반드시 검증돼야 한다. 이 점에서 일반 헬스케어 앱이나 웰니스 앱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임상 등을 통해 효능을 증명해야 하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일반 합성의약품 기반의 신약을 개발하는 것에 비해 개발비용이 비교적 적게 든다.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 중 상당 부분이 임상시험에 집중돼 있는데, 디지털 치료제는 일반 모바일 앱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임상시험 비용의 10분의 1도 들지 않는다. 또 출시 이후에도 수정과 보완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세계적으로 여러 바이오 벤처기업이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2025년까지 94억 달러(약 10조6600억 원) 규모의 성장이 예상된다. 연평균 성장률 21%다. 실제 다국적 컨설팅 기업인 매킨지앤드컴퍼니와 엑센츄어가 각각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75% 이상이 미래에는 디지털 서비스를 사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이메일이나 모바일 앱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처방을 받거나 복약 지도를 받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환자의 비율이 2016년에 비해 2019년 20% 이상 늘어났다. 이는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시사한다.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되고, 세계적으로 고령화와 만성질환 환자들이 증가하며 간편한 앱을 통해 치료받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난 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치료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약품이 채우지 못하는 환자의 수요를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복약 지도 및 라이프스타일 개선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형태의 치료제다. 대부분 모바일 앱으로 개발된다. 이 형태의 디지털 치료제는 제2형 당뇨병, 호흡 재활, 중추신경계 질환 등 꾸준한 생활습관 변화가 필요하거나 복약 지도가 중요한 질병에 집중돼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환자들의 25% 이상이 의사의 권장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복용 순응도가 낮은 환자다. 낮은 복용 순응도는 미국에서만 12만5000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지만,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은 것이 사망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이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289억 달러(약 32조7500억 원)로 추산된다. 즉 환자들의 복약 순응도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여도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실제 복약 순응도를 높인 대표적인 디지털 치료제가 프로펠러헬스의 천식 치료제 ‘레스피맷’이다. 레스피맷은 천식 환자들이 사용하는 약물 흡입기에 센서를 부착해 복용시간을 알리고 관리하는 디지털 치료제다.

프로펠러헬스가 국제학술지 <알레르기천식면역학회지>에 발표한 임상 결과에 따르면, 천식환자 495명을 대상으로 레스피맷을 사용했더니 천식 발작이79% 이상 줄었다. 응급실 방문이나 입원 등은 57% 감소했다. 또 약물을 제시간에 먹는 비율이50% 이상 늘었고 천식 증상이 없는 일수가 50% 이상 늘었다. 독일 제약사 바이엘의 소피 박 디지털헬스 최고전략책임자는 “프로펠러헬스를 포함해 여러 디지털 치료제의 성공적인 임상 결과는 시장 성장성을 뒷받침해주는 좋은 근거”라고 말했다.
프로펠러헬스의 레스피맷
프로펠러헬스의 레스피맷
게임이나 가상현실(VR) 등 시각적인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

기존 의약품이 정복하지 못한 분야가 바로 뇌질환과 행동장애다. 해당 질환은 약물 복용과 더불어 환자의 꾸준하고 적절한 뇌 활동이 필요하다.

미국 알킬리인터렉티브가 개발한 ‘AKL-T01’은 아동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하기 위한 디지털 치료제다. AKL-T01은 일종의 어드벤처 게임으로,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있도록 설계돼 있다.

먼저 길을 벗어나지 않게 방향을 조절하면서 가는 동시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장애물을 해치워야 한다. 단 사전에 지시를 받은 장애물에 대해서만 반응해야 한다. 여느 게임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올해 2월 의학 국제학술지 <란셋>에 게재된 AKL-T01의 임상 결과는 매우 인상적이다. 알킬리 연구진은 ADHD를 앓고 있는 8~12세 환자 857명 중 348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실험군에게는 AKL-T01을, 대조군에게는 일반 비디오게임을 하게 했다.

그 결과 실험군에서 ADHD 증상이 유의미하게 완화됐다. 대조군과 비교해봤을 때 AKL-T01을 처방한 환자 중 36%는 ADHD 증상의 수치가 표준 범위로 들어왔지만, 대조군의 경우 21%에 그쳤다. 국내에서는 뉴냅스가 뇌 손상으로 인한 시야장애 치료를 위한 가상현실(VR) 디지털 치료제 ‘뉴냅비전’을 개발 중이다(2파트 참조).

먹는 디지털 센서

프로테우스 디지털헬스가 개발한 ‘어빌리파이 마이사이트’는 경구용 디지털 센서다. 일본의 오츠카제약이 정신분열증 치료제로 개발하던 어빌리파이에 프로테우스 디지털헬스의 센서 ‘헬리우스’를 부착했다. 어빌리파이 마이사이트를 먹으면 약을 복용했는지 여부를 센서가 확인해 앱으로 전송한다.

이런 형태의 치료제는 디지털 치료제로서 작용하기보다는 기존 의약품에 부착해 임상시험 진행을 돕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임상시험 때 실험자가 복용량을 정확하게 지켰는지 여부 등을 확인함으로써 임상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센서를 사용하다 보니 치료제로 개발할 경우 약가가 너무 높아 경구용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는 아직 프로테우스 외에는 없다.
[이슈 하이라이트 part.1] 디지털 치료제, 의약품과 정보기술(IT) 간 줄다리기

승부처 2- IT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 제언 필요

디지털 치료제가 본격적으로 출시되며 이를 규제하고 허가해야 하는 보건당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의료기기이지만 IT의 특성을 잘 고려한 허가 기준을 새롭게 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치료제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치료제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을 이끌고 있는 미국은 ‘디지털 헬스 소프트웨어 사전인증(프리서트·pre-cert)’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디지털 치료제의 가장 큰 장점은 적은 부작용이다. 의약품처럼 체내에서 불필요한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영상진단 의료기기처럼 위험도가 높지도 않다.

또 다른 장점은 많은 환자가 사용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이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프리서트는 이런 디지털 치료제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다. 제품이 아니라 개발사를 규제하는 정책이다. 개발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요구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을 갖추면 시판 전 임상시험을 생략할 수 있다. 허가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여 빠르게 시장에 진입한 뒤 환자들로부터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제품을 개선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워낙 파격적인 정책이다 보니 아직은 파일럿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애플, 로슈 등 9개 기업이 파일럿에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이 참여 중이다.

독일은 디지털 치료제가 출시되고 1년간 환자들에게 치료제 비용을 상환해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2019년 11월 ‘디지털 공급법(DVG·Digital Versorgung Gesetz)’이 제정되면서 의료체계 전반의 디지털화가 일어났다. 의사가 처방한 디지털 치료제가 출시된 지 1년이 되지 않았을 경우 환자가 치료제에 지불하는 비용을 법정 건강보험기금에서 상환해준다. 그만큼 시장이 커질 수 있다.

승부처 3- 의약품과 IT의 개발전략, 단계적으로 차용해야

디지털 치료제가 시장 진입의 초기 단계인 만큼 비즈니스 모델을 잘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약품과 IT 제품은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도 서로 다르다. 미국의 바이오텍 퓨어테크헬스의 다프네 조하 최고경영자(CEO)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디지털 치료제가 차용할 수 있는 IT와 의약품의 단계별 개발전략을 정리했다.
[이슈 하이라이트 part.1] 디지털 치료제, 의약품과 정보기술(IT) 간 줄다리기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