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핑소스의 기술을 이용해 원본 영상(왼쪽)을 비식별화 데이터(오른쪽)로 변환한 모습. 사람은 알아볼 수 없지만 인공지능(AI)은 이 데이터를 읽을 수 있다.
딥핑소스의 기술을 이용해 원본 영상(왼쪽)을 비식별화 데이터(오른쪽)로 변환한 모습. 사람은 알아볼 수 없지만 인공지능(AI)은 이 데이터를 읽을 수 있다.
마트에 들어선 김모씨가 S브랜드 치킨을 사고 있다. 박모씨는 G브랜드 맥주를 집어 든다. 이 광경을 인공지능(AI)이 장착된 카메라가 지켜본다. 행동 패턴을 분석해 김씨는 40대 연령에 몸무게 80㎏대, 박씨는 30대에 60㎏대란 정보를 덧붙인다. 어떤 제품이 어느 소비자군에 잘 팔리는지 알아내는 분석이다. 하지만 개인의 행동을 고스란히 데이터로 저장하는 이 같은 분석은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스타트업 딥핑소스는 영상 데이터를 AI만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비식별화’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목받고 있다.

올라웍스의 경험 토대로 개발

'AI만 알고 사람은 모르게'…인텔도 반한 빅데이터 처리 기술
2018년 설립된 딥핑소스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AI 학습용 데이터를 저장·유통할 수 있는 비식별화 기술을 개발했다. 이미지, 영상 등을 촬영하면 사람의 눈으로 등장인물을 알아볼 수 없게 익명처리한다. 하지만 AI는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정보를 읽어들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예컨대 앞서 마트 사례에서 치킨을 사는 김씨의 영상은 촬영 직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흐릿하게 처리한다. 하지만 AI는 40대 80㎏의 남성이 치킨을 사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다. 김태훈 딥핑소스 대표(사진)는 “AI만 알아볼 수 있는 데이터를 생성하는 개념”이라며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살리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술의 탄생 배경은 김 대표가 2006년 설립된 스타트업 올라웍스에서 일하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올라웍스는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기업이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올라웍스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2년 글로벌 기업 인텔에 인수됐다. 김 대표는 “올라웍스의 기술은 인물 식별 AI의 첫걸음이었다”며 “그 위에 비식별화라는 고차원 기술을 얹어 딥핑소스가 탄생했다”고 했다.

GDPR로 커지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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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개인정보 보호 조치가 강화되면서 딥핑소스와 같은 비식별화 기술 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유럽이 개인정보 보호 규정(GDPR)을 도입한 게 분기점이었다. 김 대표는 “유럽의 GDPR은 세계적으로 개인정보를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분위기를 확산시켰다”며 “이제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처리한 데이터만 유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딥핑소스의 기술은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기업 인텔과 비식별화 기술을 적용한 안면인식 AI 보안 카메라를 개발하고 있다. 일본 벤처캐피털(VC) 글로벌브레인과 일본 통신사 KDDI가 손잡고 조성한 펀드는 지난해 12월 딥핑소스에 55억원을 투자했다. 이 펀드에는 미래에셋벤처투자, 스톤브릿지벤처스 등 국내 투자자도 참여했다. 투자 당시 홍주일 글로벌브레인 한국 대표는 “딥핑소스의 기술을 응용하면 데이터 불법복제를 방지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딥핑소스는 비식별화 기술을 이용해 분석한 데이터를 직접 판매하는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달 내놓은 데이터 판매 플랫폼 ‘나초스’가 핵심 기반이다. 이곳은 딥핑소스의 비식별화 기술을 적용한 AI 학습용 데이터를 판매한다. 누구나 들어와 딥핑소스의 기술을 이용해 생성한 데이터를 사고팔 수 있다. 김 대표는 “개발자들이 딥핑소스의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생산하고 판매하면 수익 일부를 딥핑소스가 갖게 되는 시스템”이라며 “AI 시대 데이터 오픈마켓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