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인 제품."
"가장 말도 안되고 멋지면서도 중요한 신기술."
"스타일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제품."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LG전자 롤러블 TV에 대한 주요 외신들의 평가다. LG전자는 8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19'에서 TV 패널이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리는 롤러블 TV를 공개했다. 반응은 폭발적. 국내외 기자와 블로거 등은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기자에게도 CES 현장에서 본 롤러블 TV는 신세계였다. 롤러블TV는 화면이 말리면서 수직으로 쭈욱 내려가 자취를 감췄다. 다시 화면이 오르내르기를 반복. 전에 볼 수 없던 광경에 한참을 빠져있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근데 왜 TV를 말아야 하는거지?".

롤러블 디스플레이는 평소엔 말아서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펼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TV에 적용했다는 건 기술적으로 보면 엄청난 혁신이긴 하다. 그러나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TV에 담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TV는 여기저기 갖고 다니는 휴대용이 아닌, 일정한 자리에 위치한 채 사용되는 정적인 기기여서다.

LG전자는 롤러블 TV를 통해 공간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정된 큰 화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존 TV와 달리 사용하지 않을 때는 말아서 보관해 집안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와닿지 않는다. 디스플레이가 아래로 말려서 없어진다고 공간 활용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화면이 말려서 평평해진 본체 박스(스피커)위를 다른 용도로 활용한단 말인가. TV 자체로 인테리어 효과가 있는데 숨길 필요가 있냐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공간 활용을 위해 매번 말았다 펴서 TV 시청을 하기에 오히려 불편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말렸던 TV가 펴지는데까지 약 13초가 걸리는데, 이는 TV 시청 기능에 대한 사용성을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또 롤러블TV는 집안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유선 케이블 위주인 시청 환경이 걸린다. TV를 볼때마다 선을 꼽고 빼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볼때 롤러블 디스플레이는 TV보다 모바일기기에 적합하고 먼저 적용됐어야 한다. 태블릿PC, 휴대용 모니터야말로 공간에 제약을 받는 기기들이다. 그럼에도 LG전자가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첫 제품으로 TV를 택한 것은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였을까.

롤러블TV는 소수를 위한 혁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반 소비자들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싸서다.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LG 롤러블TV의 가격은 8000만원 수준에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1억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현재 판매되는 65인치 LG 올레드 TV 최상위모델 가격은 750만원 정도다. 2017년에 출시한 시그니처 올레드 TV W 65인치의 출하가격도 1400만원이었다. 화면이 말린다는 이유로 안그래도 고가인 올레드TV가 10배 이상 더 비싸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 소비자들은 경험하지 못할 제품이 된 셈이다.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업계도 이 부분을 지적한다. 김현석 삼성전자 CE 부문장(사장)은 "새 제품군은 얼마나 경쟁력 있게 만드느냐가 관건인데 롤러블TV는 아직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결국엔 경제성이 문제"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롤러블TV는 경제성이 있다면 충분히 개발 가능하겠지만 그게 아닌 상황에서 보여주는건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대중성이 없는 비싼 가격의 제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냐는 의미다.

롤러블TV는 혁신 기술이지 혁신 제품은 아니다. 화면이 말리고 펴진다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왜 말려야 하는지에 대한 수긍할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공간활용의 극대화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간 활용면에서 따지자면 벽걸이 TV가 롤러블 TV보다 훨씬 낫지 않나.

LG전자는 인테리어에 돈을 아끼지 않는 부유층이 롤러블TV의 주타깃이라고 했다. 그래도 결국 타깃은 모든 소비자가 돼야 한다. 혁신은 모든 소비자가 공유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근 자사 홍보를 목적으로 살 수도 없는 최초 폴더블폰을 내놓은 중국업체와 다를 게 뭔가.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영상편집=신세원 한경닷컴 기자 tpdnjs022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