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개발자회의(SDC 2018)에서 폴더블폰의 폼팩터를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개발자회의(SDC 2018)에서 폴더블폰의 폼팩터를 공개했다.
출발선을 맴돌던 주자들이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폴더블 스마트폰에 대한 추측들이 하나 둘 결과물로 나타나면서 제조사들의 시선이 접고, 펴는 기술로 꽂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개발자회의에서 폴더블폰의 폼팩터를 공개했다. 앞서 중국 로욜이 발표한 '플렉스파이'의 폴더블폰 최초 타이틀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기술력의 한계를 드러낸 로욜에는 혹평이, 삼성전자 ‘인피니티 플렉스 디스플레이’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삼성전자가 늦어도 내년 상반기 내 폴더블폰을 출시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경쟁사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당초 화웨이는 삼성전자와 비슷한 시기에 폴더블폰을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5G를 지원하는 제품을 내놓겠다며 출시 시점을 내년 6월로 못 박았다. 레노버와 샤오미도 프로토타입을 개발중이며, 이미 플렉서블 OLED 디스플레이로 롤러블 TV를 공개한 바 있는 LG전자도 출시 시기를 저울질중이다.

폴더블폰은 새 먹거리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기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 폴더블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A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성장률(출하량 기준)은 2015년 12.2%에서 2016년 3.3%, 2017년 1.3%로 꼬꾸라졌다. 올해는 0.5%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데 폴더블폰 경쟁 구도가 좀 낯설다. 주력 모바일 기기의 전환을 맞는 시점에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자처하던 애플이 안 보인다. 애플은 지난해 10월 폴더블 디스플레이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11월에 ‘접을 수 있는 유연한 전자기기’ 기술 특허를 출원한 것외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애플의 속내는 뭘까. 애플은 아직 접고 펴는 스마트폰에 대한 확신이 없는 듯 하다. 과거 자신들이 10여년간 이끌어온 스마트폰 혁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 IT업계 전문가는 "중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까지 폴더블폰 결과물을 공개하는 상황인데 애플이 기술력이 부족해서 가만히 있겠나"라며 "애플은 폴더블폰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자체 수요 조사와 함께 타사가 완제품을 출시한 후 시장을 보고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폴더블폰은 폼팩터(form factor)의 전환을 의미한다. 폼팩터는 스마트폰 하드웨어의 크기, 구성, 물리적 배열 등 제품의 구조화된 형태를 말한다. 폼팩터가 변하면 제품의 디자인은 물론 활용도까지 바뀌는 것이다. 애플은 이를 경계하고 있다. 폴더블폰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먼저 뛰어들면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지만, 그만큼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은 지난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 최소 100만대의 폴더블폰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은 지난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 최소 100만대의 폴더블폰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제조사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폴더블폰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내구성, 휴대성보다 상품성을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는 중저가 제품 뿐 아니라 여기서도 적용된다. 폴더블폰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합쳐진 형태로, 가격은 170~200만원 정도가 예상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따로 구매할 경우 각각 100만원, 40만원 정도가 든다. 소비자가 폴더블폰을 사려면 30~60만원을 더 써야하는데, 이 간극을 메울 매력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다. 애플이 고민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애플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타사들이 폴더블폰을 출시하면 소비자 반응을 살핀 후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개선해 경쟁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제품 완성도에 집중하면서 반사이익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출시 시점을 늦추더라도 완성도를 취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초 양산 타이틀을 삼성전자에게 넘기더라도 최고 타이틀을 거머쥐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란 얘기다.

애플은 시장을 지켜볼 여유도 있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은 내년 폴더블폰을 최소 100만대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연간 스마트폰 판매량이 2억대를 넘는 애플로선 크게 부담되지 않는 판매량이다. 게다가 기존 스마트폰과 달리 출시국가도 대폭 축소된다. 애플로선 더 완벽한 제품을 위해 충분히 내줘도 될만한 시장 규모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폴더블폰의 출하량을 늘리는 시점을 2020년 이후로 보고 있다. 애플은 이때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 폴더블폰의 단점을 개선한 제품을 들고 정면 승부를 펼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치고 나간 삼성전자와 후공을 기다리는 애플. 이들이 정면으로 맞서며 폴더블폰 시장이 본격 개화하는 그날. 소비자들은 어느 쪽에 마음을 접고 펼까.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