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자를 포함한 전 세계 84명의 과학자들이 최근 25년간 남극에서 사라진 빙하의 정확한 규모를 발표했다. 각국 연구자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사라지는 남극 빙하 규모에 대해 통일된 값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이와는 별도로 해수면 상승 원인이 되는 빙붕의 붕괴 원인도 처음으로 규명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영국 리즈대 등 44개 연구기관 84명 연구자가 참여한 빙하질량균형비교운동(IMBIE) 연구진은 1992~2017년 남극에서 3조t 얼음이 사라졌고 이로 인해 해수면이 7.6㎜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남극에서 빙하와 빙붕이 녹아 해수면이 올라간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왔다. 남극 대륙의 빙하와 대륙 주변에 연결돼 떠있는 빙붕은 기후 변화의 주요 지표이며 해수면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으면 현재보다 해수면이 58m나 올라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빙하가 얼마나 녹고 있는지, 또 얼마나 다시 생성되는지 균형점을 찾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1989년부터 지금까지 150회 이상 남극 빙하 손실량을 계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발표된 빙하의 손실량과 해수 상승폭은 연구자마다 달랐다. 1992~2017년만 해도 사라진 빙하를 산출한 값이 1조3300억~4조1100억t으로 다르다.

이는 연구자마다 빙하 측정 방법과 분석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빙하의 이동속도, 빙하 부피, 중력값 관측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사라진 빙하 규모를 추정하고 있다. 빙하 이동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는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뜻이다. 레이더 인공위성을 활용해 빙하 부피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측정하기도 한다. 남극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의 질량이 줄면 중력도 작아진다. 미항공우주국(NASA)과 독일항공우주센터는 2002년 일정한 중력 포텐셜을 가진 궤도를 따라 지구 주위를 도는 쌍둥이 인공위성 그레이스(GRACE) 위성을 쏘아 올렸다. 이들 위성은 일정한 궤도를 돌다가 중력값이 바뀐 위치를 찾아낸다. 중력값이 바뀌었다는 것은 질량이 줄거나 늘었다는 뜻이다.
과학계에서는 해마다 녹는 빙하 규모를 정확히 확정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남극 대륙에 대한 근본적인 보호 대책을 내놓으려면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할 통일된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IMBIE 연구진은 1992년부터 2017년까지를 분석 기간으로 삼았다. 이 기간 24개 지구관측 인공위성에서 수집된 관측값을 분석 근거로 사용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기간 중 남극 빙하는 3조t에 이르는 얼음이 사라졌다. 그 결과로 해수면이 7.6㎜가 상승한 것으로 추정됐다. 남극 해수면 상승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2012년 이전에 남극 대륙에선 매년 760억t씩 일정한 속도로 얼음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해수면은 매년 0.2㎜씩 올라갔다.

전체 해수면 상승치의 5분의 2는 최근 5년간 일어난 결과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남극 대륙에선 연간 2190억t에 이르는 빙하와 빙붕이 녹았다. 이 기간 동안 서남극에서 사라진 빙하는 연간 1590억t으로 그 이전인 연간 530억t보다 3배나 늘어났다. 대부분 파인섬과 스웨이트 빙하가 녹으면서 빙붕이 빠르게 후퇴한 결과다. 남극 반도에서도 사라지는 빙붕의 양이 연간 70억t에서 330억t으로 늘어났다. 동남극에선 빙하 소실량과 생성량이 비슷하게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앤드류 셰퍼드 리즈대 교수는 “최근 25년 동안 해수면 상승이 때보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최근 10년간 남극에서 사라진 빙하 규모가 한층 커졌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서기원 서울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발사한 다양한 지구관측 인공위성들이 수집한 남극 빙하 관측값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며 “지금까지 발표된 어떤 수치보다 가장 정확한 빙하의 손실 규모와 해수면 상승값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는 한국 극지연구소, 미국 NASA와 텍사스대 연구진, 캐나다 워털루대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남극의 빙붕이 붕괴되면서 해수면 상승을 촉진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소개했다. 빙붕은 남극 대륙과 이어져 바다에 떠 있는 200~900m 두께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대륙 위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 해수면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빙붕의 두께가 얇아지거나 붕괴하는 모습은 꾸준히 관측됐지만 붕괴가 어떻게 시작하는지 메커니즘이 밝혀진 적은 없다.

연구진은 빙붕 바로 아래 흐르는 ‘물골’ 영향으로 빙붕이 붕괴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의 설명은 이렇다. 먼저 기온이 오르며 빙붕 아래 따뜻한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녹은 물이 빙붕의 얼음층을 녹여 밑바닥에 물골을 만든다. 그 다음 빙붕은 평형을 이루려는 성질이 있는데 그 결과로 빙붕의 상부에도 물골이 생성된다. 이 과정에서 얇아진 빙붕에 균열이 생기고 여기에 물이 유입되면서 균열이 더 커져 결국 이 균열을 따라 빙붕이 쪼개지게 된다. 극지연 연구진은 2016년 4월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에서 붕괴된 ‘난센 빙붕’을 랜샛 인공위성과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관측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이런 현상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난센 빙붕에서 떨어져 나간 이 거대 빙산은 여의도 면적의 52배(150㎢)의 크기로 ‘C-33’로 불리고 있다. 이원상 극지연 해수면변동예측사업단장은 “지구 온난화로 대기가 따뜻해지면서 빙붕의 붕괴 속도가 증가하면 해수면 상승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