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에 사는 프리랜서 김현주 씨(39)는 지난해 6월 복부 통증과 고열로 병원을 찾았다가 ‘장에 바늘이 박혀 있다’는 말을 들었다. 2주 전 자궁근종 수술을 했던 병원에서 몸속에 바늘을 넣은 채로 봉합한 것. 그런데도 해당 병원이 수술비를 환불해주지 않자 김씨는 피해구제 기관을 찾았지만 “병원이 거부하면 중재가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 할 수 없이 김씨는 형사소송을 위해 지난달 1일 서울수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의료사고 구제 문턱, 일반 환자엔 '넘사벽'
지방종 제거 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를 당한 배우 한예슬 씨가 차병원으로부터 보상을 받기로 하면서 일반인도 의료사고 시 쉽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보호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도 관련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의료사고 중재기관으로 한국소비자원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있다. 중재원은 2012년 피해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된 의료사고 중재 전문기관이다. 지난 3월까지 26만6521건을 상담했다. 피해자가 신청하고 의무기록과 증거자료 등을 제출한 뒤 해당 병원이 조정에 참여하겠다고 하면 위원회가 열린다.

하지만 병원이 불참 의사를 밝혀 각하된 신청 건수가 절반 이상이다. 2012~2017년 중재원에 접수된 신청 9814건 중 조정이 개시된 것은 47%(4613건)에 그친다. 지난해는 조정 개시율이 57%로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하지만 이도 2016년 11월부터 의료활동으로 인해 사망 등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 한해 조정이 자동 개시되는 ‘신해철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적용대상이 아닌 신청 건수만 놓고 보면 조정 개시율은 여전히 49.1%다. 조정이 무산되면 피해자는 구제를 포기하거나 돈과 시간을 들여 소송해야 한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고소를 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다.

조정이 개시되거나 소송으로 가도 입증책임은 환자에게 있다.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입증책임이 있다는 말은 ‘그날따라 해당 환자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등의 병원 측 변론을 뒤엎고 의료인 과실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으면 승소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있었던 의료소송 2854건 중 피해자 주장을 완전히 인정한 경우는 33건으로 1.2%에 불과했다. 부분적으로라도 피해 사실을 인정한 경우도 29.1%(831건)에 그쳤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