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요즘 유방암 치료는 항암제로 암 크기 줄여 절제 최소화"
유방암 치료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암 전이를 막기 위해 유방의 상당 부분을 제거한 뒤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하는 방식에서 약물이나 호르몬 등 화학요법을 먼저 해 암 크기를 줄여 유방 절제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열쇠는 ‘유방 조직 마커’다. 유방 조직 마커는 유방의 병변 부위에 삽입하는 3㎜ 크기의 물체로 병변 위치를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진공흡인 유방생검술을 한 뒤나 선행화학요법 전에 넣어 의사가 암을 추적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진공흡인 유방생검술은 유방을 4~5㎜ 정도 절개하고 작은 바늘을 넣어 진공흡인 방식으로 암이 의심되는 종양과 병변 조직을 채취하는 시술이다. 유방 조직을 검사할 때 병변이 대부분 없어지기 때문에 조직 검사 후 그 자리를 다시 찾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선행화학요법으로 종양 크기가 작아지는 경우도 병변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유방 조직 마커는 유방 촬영 장비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재질로 제작돼 의사가 병변이 있었던 곳을 확인하고 치료할 수 있다.

최근 방한한 월튼 테일러 차기 미국유방외과학회 회장(사진)은 “수술이 최소 침습을 지향할수록 병변을 정확히 겨냥하는 게 중요하다”며 “겨드랑이 림프샘에서 암이 발견돼 유방절제술을 시행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더니 유방 조직 마커 없이 유방을 절제한 환자군의 약 25%에서 암이 전이된 림프샘을 놓쳤다”고 했다. 국내 일부 병원에서도 유방 조직 마커를 시범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방 조직 마커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은 상황이라 몸 안에 이물질을 남겨두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유방 조직 마커는 인체 이식에 안전하다고 알려진 티타늄 소재로 제작된다. 크기가 작아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고 체내에 고정되기 때문에 떨어져 몸안을 돌아다닐 위험은 거의 없다.

항암제와 유방암 진단 기술의 발전 덕분에 앞으로 10년간 외과적 수술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테일러 차기 회장은 “유방 조직 마커로 병변 위치를 파악한 뒤 유방암의 특성에 따라 약물이나 호르몬 등 적절한 화학요법을 우선 시행하면 유방을 절제하지 않아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유방암 치료 후 환자가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종양 수술과 유방 재건 수술을 병행하는 사례가 많다. 테일러 차기 회장은 “유방외과 의사는 유방암을 외과적 수술만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무르지 말고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치료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진단과 치료에도 관심을 가져 종합적인 안목으로 환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