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온라인게임사업본부의 심규연 사업실장(왼쪽)과 김용대 본부장. 두 사람은 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PC온라인게임 '천애명월도'를 소개하며 "좋은 콘텐츠엔 국경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 사진=넥슨 제공
넥슨 온라인게임사업본부의 심규연 사업실장(왼쪽)과 김용대 본부장. 두 사람은 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PC온라인게임 '천애명월도'를 소개하며 "좋은 콘텐츠엔 국경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 사진=넥슨 제공
중국과 무협. 국내 PC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두 가지 키워드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았다. 그동안 중국 PC온라인게임들은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무협은 대중의 관심이 적은 데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장르였다.

최근 이같은 편견을 뒤엎은 게임이 있다. 넥슨이 지난 1월부터 서비스 중인 PC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천애명월도'다. 이 게임은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의 오로라스튜디오가 동명의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개발했다. 중국에선 이미 2016년 7월 출시돼 2년 동안 현지 PC 역할수행게임(RPG) 장르 최상위권을 유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한국은 천애명월도의 첫 해외 진출 국가다. 천애명월도는 국내 출시 직후 PC방 인기순위 9위에 오르며 기분좋은 출발을 했다. 지난주까지 4주 연속 톱10안에 머물고 있으며 RPG 장르에선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경기 성남시 넥슨 판교사옥에서 만난 김용대 넥슨 온라인게임사업본부 본부장과 심규연 사업실장은 밝은 표정으로 "갈길이 멀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들의 대답엔 만족감보다는 겸손과 냉정함이 묻어났다.

3년전 천애명월도 판권을 따낸 김용대 본부장은 처음 게임을 해보고 한국형 RPG와 다른점에 마음이 꽂혔다. 그는 "천애명월도는 정형화된 한국 RPG와는 다른 문법을 따르고 있다"며 "국내 이용자들에게 익숙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잘되면 시장 파이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텐센트에 대한 신뢰도 있었다. "중국에서 이미 검증된 게임인데 개발을 텐센트가 했더라. 텐센트라면 좋은 게임을 오래 서비스할 수 있는 개발진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넥슨이 서비스  중인 PC온라인게임 '천애명월도'. / 사진=넥슨 제공
넥슨이 서비스 중인 PC온라인게임 '천애명월도'. / 사진=넥슨 제공
▷천애명월도 국내 서비스에 대한 호평이 많습니다. 넥슨 내부 평가는 어떻습니까.

"PC RPG게임 시장이 확실히 10년 전과 많이 달라져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RPG 장르만 놓고 보면 출시 이후 PC방 차트, 이용자 방문, 게임 검색 순위 등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예전에 이만큼 화제가 됐다면 신규 이용자 수가 가파르게 늘었을 텐데 그정도는 아니더군요. 당연히 좋은 결과이고 다들 수고했지만, 더 열심히 해야될 것 같습니다."(김용대 본부장)

▷천애명월도 퍼블리싱(유통)을 결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한국 RPG는 테마파크와 비슷해요. 짜여진 퀘스트를 따라가다보면 캐릭터가 성장합니다. 내가 타기 싫은 놀이기구도 무조건 타야해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천애명월도는 놀이기구를 2~3개만 타도 되고 성장 경로도 다양합니다. 다르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봤죠. 생각해보니 당시 게임을 테스트해본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 30~40대 남성이 많았네요. 무협과 RPG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들이라 더 끌렸을지도…(웃음)"(김 본부장)

"플레이나 시간 투자를 강요하지 않아 스트레스가 적죠.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오로지 게임만 하기 위해 PC를 켜는 게 어디 쉬운가요. 천애명월도는 하루에 30분 정도만 투자해도 게임을 즐기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심규연 실장)
심규연 사업실장은 본인도 무협 장르가 어색한 세대라고 고백했다. 그는 "무협, 중국에 대한 선입견 없이 콘텐츠와 게임성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  사진=넥슨 제공
심규연 사업실장은 본인도 무협 장르가 어색한 세대라고 고백했다. 그는 "무협, 중국에 대한 선입견 없이 콘텐츠와 게임성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 사진=넥슨 제공
▷중국 게임을 성공적으로 로컬라이징(현지화)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텐센트 측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어요. 한국과 중국의 취향, 문화 차이를 설명하고 콘텐츠를 수정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메인 화면에 모든 아이콘을 펼쳐놓기를 좋아하고 한국은 깔끔한 걸 선호해요. 중국은 게임에서도 빨간색, 금색을 많이 쓰는데 우리 눈에는 촌스러워 보이죠. 이런 차이를 인지시키기 위해 한국 인기 게임 레퍼런스를 많이 준비해 보여줬어요. 다행히 개발진들이 열린 자세로 우리 의견을 존중해줘 작업이 수월했습니다."(심 실장)

▷로컬라이징 작업에서 특별히 공을 들인 부분이 있습니까.

"온라인게임은 처음 실행하고 30분 만에 결판이 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용자가 이 게임을 더 할지 말지는 보통 30분 안에 결정이 난다는 얘기죠. 그래서 첫 화면 사용자환경(UI)과 색감 등을 조정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번역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게임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최대한 무협지 읽는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했죠."(심 실장)

▷과금 모델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중국 버전에선 아이템 구매 금액과 별도로 상점을 이용하는 데 돈을 내야합니다. 국내에선 이중 과금의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라 없앴죠. 너무 비싼 아이템은 가격대를 조정했고요. 사실 무과금 이용자도 게임을 즐기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공생경제 시스템이라 아이템을 사지 않고 물물교환을 통해 얻을 수 있어요.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은 외형 치장용이거나 시간 단축용이 많습니다."(심 실장)
천애명월도 게임 내 '대경공' 장면. / 사진=넥슨 제공
천애명월도 게임 내 '대경공' 장면. / 사진=넥슨 제공
▷기존 무협 게임들과의 차별점은 무엇입니까.

"게임 기술 중 대경공이라는 게 있어요. 하늘로 날아올라 공간을 이동하는 기술인데 무협의 꽃이라 불리죠. 천애명월도는 대경공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캐릭터를 조작하며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무협 게임들은 미리 만들어놓은 대경공 영상을 보여주는 식이 많았거든요. 또 콘셉트만 가져온 게 아니라 세계관부터 디테일한 부분까지 정통 무협게임을 표방합니다. 무협 팬에게는 이만한 게임이 없다고 자신해요."(심 실장)

▷중국산 게임 퀄리티가 많이 올라왔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사실 7~8년전 중국 PC RPG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이미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개발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중국 게임이 저평가됐던 건 한국의 눈높이가 워낙 높았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 취향, 선택의 문제였다고 봅니다. 물론 현재 중국 실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더 체감하고 있어요. RPG에선 보통 캐릭터별 성격이 달라 성장 속도가 다른데, 천애명월도는 캐릭터별 성장 밸런스가 놀랄 만큼 완벽합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평가가 나오고 있고요."(김 본부장)
천애명월도는 넥슨이 선보이는 첫 중국 PC온라인게임이다. 김용대 넥슨 온라인게임사업본부 본부장은 "중국 게임 로컬라이징은 상상하기도 어려웠지만, 무협과 RPG에 대한 애정이 있어 밀어붙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 사진=넥슨 제공
천애명월도는 넥슨이 선보이는 첫 중국 PC온라인게임이다. 김용대 넥슨 온라인게임사업본부 본부장은 "중국 게임 로컬라이징은 상상하기도 어려웠지만, 무협과 RPG에 대한 애정이 있어 밀어붙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 사진=넥슨 제공
▷업계에서 중국의 공세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한국 게임 산업은 게임을 좋아하는 개발자들이 꽃피운 시장입니다. 반면 중국은 거대 기업이 자본을 집중해 전략적으로 게임 사업을 키운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 노하우가 있는 게임 전문가 집단이 많겠죠. 그래서 한국은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재미를 만드는 일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글로벌에서 통한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처럼요. 또 아직은 중국이 우리나라에서 얻는 것보다 우리가 중국에서 올린 성과가 월등히 많은 게 사실입니다."(김 본부장)

▷한국 게임 업계가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체질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PC온라인게임 시장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신작을 출시할 때 시장의 성장세, 하락세를 더 크게 체감합니다. 천애명월도를 내놓으면서 시장이 역성장할 때 신작 론칭이 얼마나 힘든 지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PC온라인게임 시장은 확실히 하향세를 타고 있고 이용자들의 평가는 더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내 시장만 보기보다 글로벌에서 기회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넥슨 역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PC온라인게임사업에 투자해나갈 예정입니다."(김 본부장)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