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환자들도 혁신 신약 혜택 보려면…글로벌 임상 경쟁력부터 갖춰야"
"국내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사들에게도 신약 개발의 노하우가 전수될 수 있습니다."

지동현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KoNECT) 이사장은 23일 다국적제약사들의 다국가 임상시험을 국내에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하는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기존에 나와있는 항암제로는 더 이상 호전될 기미가 없는 환자들이 다국적제약사들이 개발하고 있는 혁신 신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키트루다, 옵디보, 킴리아 등 혁신적인 신약들은 현실적으로 해외 제약사들이 개발하고 있다"며 "이들이 글로벌 단위로 진행하는 임상시험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국내 환자들만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시험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출시 이후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은 신약이 국내에 들어오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인허가를 받기 위해 별도의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길게는 3~4년의 시차가 발생해 국내 환자들이 손해를 보는 셈이다.

지 이사장은 "지금보다 다국가 임상시험에 대한 참여가 저조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해외시장과 국내시장 사이에 신약 출시 시차가 3~4년까지 벌어졌었다"고 했다. 한 해 판매 금액만 16조원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휴미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휴미라는 미국에서 2002년 출시됐지만 한국에서는 국내 허가용 임상시험을 거쳐 2006년이 돼서야 비로소 허가를 받았다.

지 이사장은 다국가 임상시험 유치가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역량 강화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혁신 신약들의 임상시험을 경험하면서 국내 연구자와 병원 의료진들이 이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 이사장은 "임상시험은 제약사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연구자들과 병원 의료진들의 임상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적인 임상시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국가 임상시험의 내용은 바뀌고 있다. 최종적인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3상 시험의 비중이 줄고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1·2상 시험의 비중이 늘고 있다. 2012년 37%였던 1·2상 임상시험 비중은 2016년 48%로 늘었다.

지 이사장은 "특허가 만료돼 그와 같은 성분으로 만드는 복제약이나, 기존의 약을 개량해 만드는 신약의 경우 초기 단계의 임상시험이 가장 쉽지만, 전에 없던 개념의 혁신 신약은 초기 단계의 임상시험이 가장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국적제약사들이 개발하는 혁신 신약의 초기 임상시험의 국내 유치가 늘면 임상시험을 어떻게 설계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신약 개발 인프라 강화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환자들도 혁신 신약 혜택 보려면…글로벌 임상 경쟁력부터 갖춰야"
그동안 한국의 임상시험 환경은 꾸준히 개선됐다. KoNECT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중국에 이어 글로벌 임상시험 점유율 6위를 기록했다. 2016년 8위에서 두 단계나 오른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정부의 임상시험 환경 조성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20위권 밖이었다.

도시 별로는 서울이 미국 휴스턴을 누르고 임상시험 시행 건수 1위 자리를 탈환했다. 한국에서 진행된 다국가 임상시험 건수는 2004년 61건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267건까지 늘었다.

충분한 성과는 아닐까. 지 이사장은 "한국의 임상시험 환경이 지속적으로 좋아지면서 성과를 내 온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다만 라이벌 관계에 있는 중국, 일본 역시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최근 임상시험 규제 환경을 대폭 개선해 한국을 제치고 다국가 임상시험 점유율 순위 5위에 오르면서 역대 최고 순위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일본 역시 전년 대비 한 단계 상승한 8위를 기록했다.

그는 "최근 다국적제약사들은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할 때 한국을 중국과 일본과 하나의 지역으로 묶으려는 추세"라며 "한국의 임상시험 환경이 좋더라도 중국, 일본이 더 좋으면 우리 몫을 빼앗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국가 임상시험에 참여하더라도 한국인 수가 충분하지 않으면 국내에 출시하기 위해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임상시험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는 지난달 국가 개념이 아닌 지역을 기준으로 하도록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도 했다.

지 이사장은 한국의 다국가 임상시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로 비용 문제를 꼽았다. 그는 "약 값, 입원비, 검사비용 등 통상진료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 임상시험 비용을 낮추고, 빠른 보험등재, 합리적인 약가 책정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상시험의 효율성과 품질을 올리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허가당국의 심사관 수를 늘린다거나 규제의 효율화를 통해 임상시험 승인 시간을 단축하고,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첨단 기술을 임상시험 환경에 적용한 스마트 임상시험센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은 국내 신약 개발의 토대 강화를 위한 중개연구 지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경험이 많지 않은 국내 제약사와 벤처기업들에게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임상시험을 설계할 수 있을지 컨설팅을 해 주거나 혁신적인 신약개발과 관련된 연구자들의 임상시험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방안으로 꼽았다. 그는 "신약 개발이 고도화되면서 산업계보다는 학계에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연구자들의 연구성과가 상용화까지 이어지도록 정부가 중간에서 다리를 놔줘야 한다"고 말했다.

KoNECT는 임상시험 설계와 관련된 컨설팅, 임상시험 관계자 교육, 정책 제언 등 임상시험과 관련된 전반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2007년 복건복지부 지정 사업단으로 설립됐다가 이후 독립법인으로 2014년 독립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