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32명의 과학자와 기업인이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됐다.

과학기술유공자 제도는 국민이 존경할 만한 뛰어난 업적이 있는 과학기술인을 국가유공자급으로 예우하기 위해 2016년 12월 도입됐으며, 실제 유공자를 선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의 밥상을 풍성하게 한 육종학자인 고(故) 우장춘 농업과학연구소장과 한국 과학자 중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았던 고 이휘소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이론물리부장 등 유명 과학자들과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등 기업인들도 포함됐다.
IT·조선 강국 이끈 '산업계 두 거목'… 윤종용·민계식, 과학기술 유공자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27일 과학기술유공자로 각계 추천을 받은 32명을 최종 선정했다. 이들 중 생존해 있는 인물은 윤 전 부회장과 민 전 회장을 포함해 1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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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부회장은 반도체 씨앗을 뿌리고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뿌리를 내린 인물로 과학기술유공자에 선정됐다. 그는 4기가 D램과 비메모리인 시스템온칩(SoC)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초고속 통신망 구축,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2000시스템과 단말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닦은 공적을 인정받았다. 그의 재임기간 삼성전자는 매년 매출의 6%에 해당하는 2조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고 이는 회사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회사로 자리를 굳히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 전 회장은 현대중공업을 세계 최고의 종합 중공업 회사로 키우며 한국을 조선 강국으로 이끈 주인공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평소 “기업은 경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술 개발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선박 설계 기술 확보에 노력했다. 1980년대 초 한국은 선박 설계 독자 기술을 확보하고 1990년대 들어 이를 세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현대중공업은 1974년 1호선 명명식을 개최한 이후 20년 만인 1994년 4000만t을, 30여 년 만인 2005년에는 1억t의 선박을 인도해 세계 조선산업 사상 최단기간 최대 건조 실적을 달성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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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지층 연구로 석탄 에너지화에 기여한 정창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생존 유공자 중 최연장자로 이름을 올렸다. 문교부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내며 낙후된 보건복지·교육 행정의 기틀을 마련한 권이혁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과 중국·일본 치과대 개혁을 주도한 박노희 UC LA 교수도 이름을 올렸다.

국가 발전의 초석을 놓은 과학기술인을 국가유공자급으로 대우해달라는 요구는 과학계의 숙원이었다. 국가보훈처가 선정해 지원하는 국가유공자는 주로 참전용사, 독립유공자, 민주화운동 희생자, 공무상 희생자 등으로 한정되다 보니 과학기술인은 훈장 수여 등으로 명예를 인정받는 데만 그쳐왔다. 스웨덴에서는 왕립과학원장이 행사에 참석하면 왕실 가족조차 일어서서 맞는 전통이 있을 정도로 예우하고 있다. 중국도 과학기술 분야 최고 권위자인 ‘원사’ 850명에게 차관급 대우를 하는 등 실질적 지원을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국가유공자에 준한다고는 하지만 국가유공자가 받는 연금이나 국립묘지 안장 등 실질적 예우와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실질적인 혜택이라곤 이르면 2월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출입국 수속이 간소한 ‘패스트 트랙’을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문다. 유장열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유공자지원센터장은 “유공자를 일일이 만나 어떤 예우와 지원이 필요한지 의견을 들은 뒤 제도를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