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게임 '한류 대표'로… 화장품 제쳤다
‘배틀그라운드’ ‘리니지M’ 등 글로벌 히트작을 잇달아 배출한 국내 게임업체들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6조원에 가까운 수출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류 대표 품목으로 꼽혀온 화장품 수출액(5조3000억원 추정)을 뛰어넘는 성과다.

20일 게임 및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게임업체의 올해 수출액은 3분기 누적 3조5000억원을 넘어선 데 이어 연말까지 5조4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1만4000여 개에 달하는 중소 게임업체 실적까지 합치면 전체 수출 규모는 6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게임산업 수출액은 3조9000억원이었다.

게임 수출 성과는 한류 대표 상품으로 꼽혀온 화장품 실적을 압도하는 것이다. 지난 11월까지 화장품 누적 수출액은 4조8560억원이며, 올 전체로는 5조3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K게임 '한류 대표'로… 화장품 제쳤다
한국 게임업체들은 올해 PC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분야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난 3월 출시 이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블루홀의 온라인 총싸움게임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는 연말까지 3000만 장의 판매가 예상된다.

모바일게임 분야에서도 넷마블게임즈의 ‘리니지2 레볼루션’이 그동안 해외 업체들에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도 이달 대만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현지 앱(응용프로그램) 장터 매출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출시된 컴투스의 ‘서머너즈워’는 북미, 유럽 등지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며 누적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계 게임시장이 모바일로 재편되면서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진 한국 업체들의 도약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배틀그라운드 흥행으로 ‘온라인게임 종주국’의 자존심을 되찾은 것도 의미있는 성과”라고 분석했다.
K게임 '한류 대표'로… 화장품 제쳤다
“한국에서 개발한 작품이 ‘올해의 게임’ 목록에 오르다니 믿기지 않네요.”

블루홀의 총싸움게임 ‘배틀그라운드’가 연말을 맞아 미국 각 언론매체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게임(GOTY: Game of the Year)’ 수상작 리스트에 잇달아 이름을 올리자 네티즌들이 보인 반응이다. 한국에서 개발한 게임이 GOTY 후보군과 수상작 목록에 오른 것은 배틀그라운드가 처음이다.

이 게임은 타임지, 뉴스위크 등 유명 매체에서 꼽은 올해 ‘톱10’ 게임에도 포함됐다.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올해의 게임 1위에 선정했다. ‘게임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골든조이스틱어워드, 더게임어워즈 등 세계 5대 게임상에서도 부문상을 받았다. 지난해까지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한국 게임업계가 배틀그라운드 흥행 덕분에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온라인 자존심 회복

한국은 세계 최초 PC 온라인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를 만든 ‘온라인게임 종주국’으로 꼽힌다. 게임은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즐기면서 결제하도록 하는 ‘부분 유료화’ 모델을 처음 도입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게임의 위상은 2010년대 초반 들어 급격히 무너졌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모바일게임이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대형 게임업체들의 모바일 적응이 늦어지면서 중국산 게임이 안방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한 탓이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한국 업체들이 중국 게임사의 하도급업체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블레스, 서든어택2 등 온라인게임 기대작도 잇달아 흥행에 실패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하지만 올해는 한국 게임업계가 희망을 발견한 해였다. 배틀그라운드가 인기를 끌면서 중국 최대 게임업체 텐센트가 거액을 주고 배틀그라운드 중국 서비스권을 사갔다.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던 신작 소식도 잇달아 들려온다. 블루홀이 ‘에어’, 넥슨이 ‘페리아연대기’를 내년 상반기에 선보일 계획이다. 로스트아크(스마일게이트), 프로젝트TL(엔씨소프트) 등 게이머들이 손꼽아 출시 소식을 기다리는 온라인 대작도 개발 중이다.

모바일 게임도 전망이 밝다. 올해 넷마블게임즈 ‘리니지2 레볼루션’, 엔씨소프트 ‘리니지M’이 해외 시장에서 흥행 물꼬를 튼 데다 내년에 굵직한 신작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넥슨은 ‘야생의 땅: 듀랑고’, 넷마블은 ‘세븐나이츠 모바일’,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2M’ ‘블레이드앤소울 모바일’ 등을 개발 중이다.

◆대-중소업체 ‘양극화’ 해결해야

한국 게임산업이 내수산업을 넘어 수출산업으로 체질 전환에 성공하면서 ‘기초 체력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일부 게임업체들이 온라인게임을 넘어 콘솔게임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플랫폼 다변화도 시작됐다.

지난 12일 출시된 배틀그라운드 엑스박스원판은 발매 이틀 만에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했다. 유튜브, 트위치 등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인기 덕분에 e스포츠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게임산업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형 업체들이 거듭 성장하는 반면 중소 게임업체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리니지 등 유명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한 게임이 시장 흐름을 주도하면서 국내 중소 개발사가 대형 게임사와 경쟁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게임의 다양성이 줄어들어 국내 게임업계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 게임사들은 산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중소형 개발사들과 계약할 때 최소 단가를 보장한다”며 “국내 대형 게임사들도 이 같은 관행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하늘 기자 sk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