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미국 古천문학자들 국제학술지에 소개

조선·청나라·日 옛 문헌 조사
'붉은 오로라' 관측 기록 발견
"당시 자기폭풍 규모 매우 커
중동지역 등서도 일어났을 것"

강력한 자기폭풍의 피해 경고
"1989년 일어난 자기폭풍은
美동부 해안 600만 가구를
9시간 암흑에 빠뜨리기도"
자기폭풍으로 생긴 지구 자기장 교란으로 발생한 오로라의 모습. 극지방에서 자주 관찰된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자기폭풍으로 생긴 지구 자기장 교란으로 발생한 오로라의 모습. 극지방에서 자주 관찰된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1770년 9월10일 조선과 청나라, 일본의 밤하늘이 섬뜩한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이 신비로운 현상은 9일이나 계속됐다. 3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일부 문헌은 당시 이 신비한 현상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일본의 옛 천문 문헌인 세카이에 기록된 오로라 현상. 교토대 제공

일본의 옛 천문 문헌인 세카이에 기록된 오로라 현상. 교토대 제공

일본 오사카대 교토대와 미국 콜로라도대 고(古)천문학자들이 한국과 중국, 일본의 옛 문헌을 토대로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관측된 이 기이한 현상이 기록적인 자기폭풍의 결과로 생긴 오로라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 최신호가 소개했다.

태양 표면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지닌 입자들이 폭발하면서 쏟아지는 ‘코로나 자기 방출’이 발생하면 극지방에선 극심한 자기 폭풍이 일어난다. 기록에 나타난 붉은 밤하늘은 자기장 교란으로 생긴 오로라로 추정된다. 당시 자기폭풍 규모는 1859년 9월 영국 천문학자 리처드 캐링턴이 관측한 기록적인 태양 폭발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캐링턴이 관측한 고에너지 입자는 18시간 만에 지구에 도착해 미국과 유럽의 전신 시스템을 한순간 마비시켰다. 교환원이 감전되는가 하면 전신 장치에 불이 나기도 했다. 평소 극지방에서만 나타나던 오로라가 카리브해 지역에서도 관측됐다. ‘캐링턴 사건’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대표적인 자기폭풍 사례로 꼽힌다.

하야카와 히사시 오사카대 교수와 연구진은 일부 기록에서 발견된 이 비밀스러운 현상을 다시 밝혀내기 위해 붉은 오로라가 언급된 관련 문헌을 뒤지기 시작했다. 청 왕조의 공식 기록과 조선왕조실록 및 승정원일기, 일본 내 기록 111건을 집중 조사했다. 기록을 검토한 결과 동북아에서 오로라가 관측된 기간은 1770년 9월10일부터 19일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 왕조 공식 기록에선 붉은색 오로라를 봤다는 기록이 22회나 발견됐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선 아무런 기록을 찾지 못했다. 연구진은 9월16~18일 조선에선 비가 오는 궂은 날씨 때문에 천문 현상을 관찰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 다른 기록이 유럽에서 발견됐다. 독일 천문학자 요한 카스파가 남긴 태양흑점 기록과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 지휘로 서남아시아인 티모르섬을 지나던 영국 탐험선 엔데버호 기록에 관련 자료가 남아 있었다. 이는 오로라가 훨씬 낮은 위도에서도 관찰됐다는 뜻이다.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동시에 오로라를 관측한 최초 기록에 해당한다. 흔히 오로라는 극지방에서 발견된다. 이처럼 낮은 위도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당시 자기폭풍 활동이 활발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하야카와 교수는 “당시 자기폭풍 규모는 매우 컸고 동아시아뿐 아니라 저위도 지역에서도 일어났다고 본다”며 “중동 지역 기록으로 조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흑점 기록도 꼼꼼히 뒤졌다. 흔히 자기폭풍은 흑점 형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흑점 크기는 캐링턴 사건 때 발견된 흑점보다 두 배 이상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1770년 일어난 자기폭풍 규모가 캐링턴 사건과 비슷하거나 훨씬 컸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당시 오로라는 9일간 지속됐는데 이는 캐링턴 사건 때 나흘간 지속된 것보다 두 배 넘게 긴 기간이다.

연구자들은 캐링턴 사건이 더는 특이한 사건이 아닐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소베 히로아키 교토대 교수는 “이 같은 큰 규모의 자기폭풍은 100년마다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강력한 자기폭풍이 발생하는 빈도를 다시 추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자기폭풍이 다시 일어나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기 의존성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1989년 일어난 자기폭풍은 9시간 동안 미국 동부 해안 일대 600만 가구를 암흑 상태에 빠지게 했다. 캐나다 퀘벡 지역은 90초간 블랙아웃이 일어나기도 했다. 영국 로이드은행는 2013년 캐링턴 사건 규모의 자기폭풍이 다시 일어나면 2조6000억달러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연구 보고서를 냈다. 연구진은 1770년 규모와 비슷한 자기폭풍을 역사 기록에서 찾고 있다. 하야카와 교수는 “당대 이상 천문현상을 기록한 고문서의 존재 덕분에 1000년간 태양 활동을 역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로라에 관한 기록은 곳곳에 내려온다. 기원전 567년 고대왕국 바빌로니아의 천문 기록에서도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미 비슷한 규모의 또 다른 자기폭풍 기록을 찾았다고 밝혔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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