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교과서에 따르면 지구상 생물은 세균, 진핵생물, 고세균 3대 생물군으로 나뉜다. 세균이 핵과 세포질 구분이 따로 없는 하나의 세포로 이뤄졌다면 진핵생물은 핵이 별도로 있고 염색체를 만들어 분열한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 식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세균은 세균처럼 핵이 없지만 세포질, 세포벽 구성이 세균과 달라 다른 생물군으로 분류한다. 한국인 과학자가 포함된 국제 공동 연구진이 이런 3대 생물군과는 특성이 달라 ‘제4의 생물군’이 될 가능성이 큰 괴짜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스스로 생존하는 '괴물 바이러스' 발견
프레데릭 슐츠 미국 에너지부 산하 합동게놈연구소 박사후연구원과 이태권 오스트리아 빈대 연구원(현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빈 북쪽 외곽의 작은 도시인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한 하수처리장에서 생물처럼 단백질을 합성하는 ‘거대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7일자에 발표했다.

생명체는 DNA를 스스로 복제하거나 유전정보를 복사해 옮기는 RNA를 거쳐 단백질을 만드는 ‘번역’ 과정을 통해 생명 현상을 유지한다. 반면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의 몸을 빌렸을 때만 물질대사, 증식 같은 생명 현상을 하기 때문에 생물도 무생물도 아니라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연구진은 미생물을 이용해 하수를 처리하는 연구를 하다 스스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이 괴짜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바이러스에는 발견한 곳의 지명을 따서 ‘클로스노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바이러스에서는 보통의 바이러스에는 없는 독특한 성질이 발견됐다. 고등생물처럼 유전정보를 복제해 단백질을 만드는 번역 기능이 포함돼 있었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가 아메바나 조류 등 다른 단세포 생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 공동 저자로 참여한 이 교수는 “작은 바이러스가 숙주인 여러 단세포 생물을 감염시키는 과정에서 숙주에서 얻은 유전자 조각을 모아 단백질을 만드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가져온 유전자로 생물처럼 단백질을 만드는 번역시스템을 갖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마치 죽은 사람의 뼈와 살로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된 ‘프랑켄슈타인’과 비슷해서 ‘프랑켄슈타인 바이러스’로도 불리는 이유다.

과학자들은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고대에 살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멸종된 원시생명체에서 유래했거나 작은 바이러스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결과로 보고 있다. 사이언스는 과학계에선 이 생명체를 앞으로 계속해서 바이러스로 분류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에 세 부류로 나뉜 생명의 영역에 네 번째 영역을 추가해야 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