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 척수 마비환자 치료한다
사고로 척수를 다쳐 13년간 일어서지 못하던 32세 여성을 포함해 하반신 마비 환자 8명이 첨단 뇌과학과 정보기술(IT)의 힘으로 다시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사고 이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운동과 감각 기능을 되찾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겔 니콜레리스 미국 듀크대 교수 연구진과 브라질 상파울루 신경재활치료연구소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3~13년째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환자 8명에게 1년간 뇌기계인터페이스(BMI)와 가상현실(VR), 외골격로봇(입는 로봇)을 이용해 재활훈련을 한 결과 잃어버린 운동 기능과 촉감, 내장 기능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12일자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세계 25개국 과학자 100명이 모여 척수손상 환자의 재활을 돕는 ‘워크 어게인(Walk agai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연구진은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환자 8명에게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감지해 로봇 같은 기계에 전달하는 BMI와 컴퓨터가 만든 가상세계를 보여주는 VR 장비인 오큘러스 리프트를 씌웠다. VR기기 화면에 자신의 가상 캐릭터 다리를 등장시켜 걷는 모습을 상상하라고 주문했다. 니콜레리스 교수는 “사고를 당한 환자는 오랫동안 뇌에서 근육까지 운동신호가 전달되지 않아 신경회로가 사실상 꺼져 있다”며 “걷는 상상을 통해 뇌와 신경세포를 자극해 운동 기능이 되살아나도록 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BMI 장치와 연결된 외골격로봇을 입고 걷는 훈련을 했다. 외골격로봇은 미세한 동작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일부 살아난 신경세포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1년간 매주 2시간씩 훈련한 결과 대부분 환자에게서 변화가 나타났다. 환자 4명은 감각 기능과 운동 능력을 일부 회복하면서 완전마비에서 부분마비 진단을 받을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