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 불허 결정 때 양사 간 책임 소재 공방 불가피
'공정위가 불허하면 SKT 유리' 관측도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안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양사 간 갈등으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의 불허 의견이 최종심의에서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양사 간 희비가 갈릴 수밖에 없는 만큼 이미 양측이 등을 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2일 관계 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CJ헬로비전은 최종심의를 앞두고 SK텔레콤과는 별개로 법무법인 화우를 대리인으로 새로 선임했다.

CJ헬로비전은 그동안 SK텔레콤이 선임한 법무법인 광장·세종에 대리인 자격을 일임하고 공정위에 필요한 입장을 전달해왔다.

사실상 공동대리 형식을 취하던 양 사가 결국 최종심의에 임박해 각각 최종심의를 준비하는 셈이다.

CJ헬로비전 측 관계자는 "우리 목소리를 확실히 내기 위해 화우를 새로 선임했다"며 최종심의에서 SK텔레콤과 다른 대응을 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화우는 국내 6대 로펌 중 CJ헬로비전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세종·김앤장·광장·태평양·율촌 등은 모두 이번 인수합병 사안과 관련해 SK텔레콤이나 KT, LG텔레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 간 입장 차이는 공정위 사무처의 불허 의견이 알려진 지난 5일부터 미묘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CJ헬로비전은 당일 "피해를 온전히 CJ헬로비전이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며 공정위 사무처의 의견을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눠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최악의 심사', '고사위기에 몰아넣는 조치', '매우 구태한 잣대' 등의 수위가 높은 표현과 상세한 수치 자료를 동원해 절박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반면 SK텔레콤은 "유료방송 시장 도약에 일조하고자 했던 계획이 좌절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짧고 담담한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가 양사의 의견서 제출 기한 연장 요청을 불허했을 때도 장문의 입장을 재차 강조한 CJ헬로비전과 달리 SK텔레콤은 아예 입장 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

사무처의 불허 의견에 대한 최종심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결정도 SK텔레콤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개 결정은 사무처의 불허 의견에 대한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호소해온 CJ헬로비전의 입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양 사가 공동 명의로 비공개를 신청했지만 SK텔레콤이 주로 비공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양사 간 입장 차는 인수합병 계약이 무산됐을 때 SK텔레콤이 어느 선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셈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인수합병 계약서에 '양사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의무 조항이 명시돼있기 때문에 공정위의 최종 판단에 따라 양사의 책임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심의에서 불허로 결정이 나면 계약 파기 사유가 외부에 있는만큼 계약당사자인 SK텔레콤은 책임을 벗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손익분기점을 밑돌 수준의 방송권역 매각 조건으로 승인이 날 경우 SK텔레콤은 인수합병에 따른 실익이 없어 이를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계약 파기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CJ헬로비전은 SK텔레콤과 인수합병 계약을 한 뒤 SK브로드밴드와의 합병 법인 출범 준비를 위해 이미 영업비밀 상당부분을 SK텔레콤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합병이 무산되면 CJ헬로비전의 손해가 가장 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화우 영입이 로비스트 역할을 맡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화우에는 한철수 전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등 공정위에 정통한 인사들이 고문을 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새 로펌은 '심리용'보다 '로비용'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며 "M&A를 강하게 희망하는 CJ헬로비전의 다급해진 형편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에 더해 '공정하고 정확한 심사'를 이유로 7개월간 시간을 끌어온 공정위가 심사보고서 발송 이후 심의 절차를 이례적으로 서두르고 있어 의구심을 자아낸다.

공정위는 지난 4일 '조만간 심사보고서가 발송된다'는 언론 보도에 '발송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가 2시간 뒤 심사보고서를 발송해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또 통상 한 달여 전 미리 최종심의 일정을 정하던 것과 달리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최종심의는 급박하게 정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roc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