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탁, 33세 때 쓴 박사학위 논문 통계물리학 역사를 다시 쓰다
고(故) 조순탁 박사(1925~1996)는 한국 첫 이론물리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기초과학의 토대가 없던 시절 한국 물리학의 씨앗을 뿌린 학자로 평가받는다. 1955년 미국 미시간대로 유학을 떠난 조 박사의 스승은 세계 통계 물리학자이던 조지 울렌벡 교수였다.

울렌벡 교수는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 온 제자에게서 남다른 총명함을 발견하고 어려운 과제 하나를 맡겼다. 조 박사는 처음 6개월 가까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울렌벡 교수도 연구 주제를 바꿔보라고 했다. 한동안 새로운 주제로 연구하던 조 박사는 어느 날 갑자기 이전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순식간에 문제를 풀어냈다. 이렇게 작성된 그의 박사논문 이름은 ‘고밀도 기체의 운동학적 이론’이었다. 훗날 그를 세계적 물리학자 반열에 올린 이른바 ‘조-울렌벡 이론’이다. 이 이론은 기체의 운동을 기술한 러시아 물리학자 니콜라이 보골류보프의 이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밀도가 작지 않은 계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볼츠만 방정식을 일반화시킨 최초의 방정식이다. 통계역학 분야에서 난제로 꼽히던 문제를 이름도 낯선 가난한 나라에서 온 33세의 유학생이 풀어낸 것이다. 이 논문은 교과서에 실리며 통계역학 분야에서 수없이 인용되는 업적이 됐다. 김창섭 전남대 물리학과 교수는 “기체의 운동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기존의 방정식을 더 고차원적인 이론으로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박사는 미국에 자리를 줄 테니 함께 연구하자는 울렌벡 교수의 제의를 뿌리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대 서강대 KAIST 한양대 등에서 제자를 길렀다.

조순탁 박사는 ‘조-울렌벡 이론’으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한국 최초의 이론물리학자다. 사진은 조 박사의 초상을 팝아트로 표현한 작품.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조순탁 박사는 ‘조-울렌벡 이론’으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한국 최초의 이론물리학자다. 사진은 조 박사의 초상을 팝아트로 표현한 작품.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192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그는 1944년 일본 교토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광복을 맞이해 귀국한 뒤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지만 교육제도가 다져지지 않아 사실상 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강사 생활을 하다가 30세에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으로 떠나며 물리학 및 수학 필독서를 정리한 ‘이론 물리학자가 되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은 많은 후배에게 회자되며 지적 자극을 줬다.

1970년대 초 서강대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매주 수요일 연구실에 동료 학자들을 불러모아 논문 하나씩을 돌려 읽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구철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수요 세미나는 나중에 ‘대우 통계물리 월례강연회’로 발전했는데 조 박사는 은퇴한 뒤에도 참석했다”며 “조 선생님의 학문에 대한 열의에는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 됐다”고 회상했다. 조 박사는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오종훈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겸직교수는 “연구의 기본이 되는 물리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계산기를 자주 이용했다”며 “당시 한국에서 최고령 프로그래머였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유하늘 기자 sk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