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물관리 기술로 한류 맥 잇는다
이집트 신화의 눈(Nun)이나 힌두교의 바루나가 낯설다면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이나 고구려 주몽의 외할아버지 하백(河伯), 중국의 용신(龍神)은 비교적 낯익다. 모두 물을 관장하는 신들이다. 고대인은 왜 이 신들을 숭배했을까. 농경사회에서 물은 농사는 물론 국가경제의 흥망을 가르는 ‘절대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업화나 정보화 시대, 융·복합 시대가 됐다고 물 관리가 덜 중요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후변화와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물은 더욱 정교하게 관리해야 할 자원이자 첨단산업이 됐다.

최근 방영된 TV 사극 ‘장영실’에 나온 앙부일구, 자격루, 혼천의 등 다양한 과학기기 중 측우기는 이탈리아의 가스텔리가 만든 것보다 200년 앞선 세계 최초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다. 측우기 발명은 물을 더 이상 신비와 숭배, 종교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과학과 정보, 통제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젠 그 과학이 더욱 발달해 정보통신기술(ICT)과 디지털 융·복합 기술,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물 자원을 최적화해 관리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10년 내에 닥칠 가장 큰 위험으로 물 위기를 꼽았다. 미래에는 물을 두고 갈등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심각성을 반영해 UN은 1993년부터 매년 3월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올해 물의 날 주제는 ‘물과 일자리’였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세계 노동자의 절반인 15억명이 물과 관련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세계 물 시장 규모는 반도체 시장의 2배가 넘는 6000억달러이며, 매년 4% 이상씩 성장해 2020년에는 75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물 산업이 커지자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해수담수화, 싱가포르는 물 재활용, 네덜란드는 유역 단위 종합개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베올리아, 수에즈 등 물 관련 세계 상위 15개 기업은 세계 물 시장의 51%를 점유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물 부족이 심해지면서 물의 자원적 효용성을 높이거나 실시간으로 수급을 조절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첨단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 물 관리로 우리가 잘하는 분야다. 경기 파주시에서는 실시간으로 수질을 측정해 전광판과 스마트폰 앱으로 정보를 제공하자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주민 비율이 100명 중 1명에서 25명으로 늘었다. 수돗물 만족도도 59%에서 85%로 높아졌다. 경북 고령군에서는 수도관에 첨단 센서를 달아 수압과 누수를 실시간으로 관리한 결과 유수율이 78%에서 81%로 높아졌다. 해수담수화 기술도 세계적 수준이어서 기대가 많다. 특히 필터, 펌프 등 관련 설비의 제조기술 외에도 건설·시공, 운영, 설계 단계에서 연관 산업 범위가 광범위하고 관련 업체도 2000여 곳에 달해 일자리 창출과 경기 활성화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이들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현재보다 2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중동 등 주요 진출대상 국가와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시장개척자금 등 다각적으로 지원해나갈 계획이다. 이란의 경제 제재 해제 등으로 최근 중동의 건설시장이 커지고 있다.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고 지하에 댐을 건설해 빗물을 땅속에 보관하며, 센서를 활용해 원격으로 물을 관리하는 우리 스마트 물 관리 기술은 사막이 많은 중동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한류로 상징되는 한국의 문화 수출이 세계시장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드라마 ‘장영실’도 곧 일본 등 해외시장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이제 물 관리 기술 차례다. 그게 장영실의 후예인 우리가 할 일이다.

강호인 < 국토교통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