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바둑 많이두면 뇌기능 향상…'알파고'도 사람과 비슷"
뇌기능 활성도 높아지고, 'ADHD 아동' 주의집중력 향상 연구도


인간과 기계 사이 '세기의 대결'로 불리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은 '기싸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3일 "대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정적 소요를 통제하는 '기싸움'의 영역은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인간의 고도화된 뇌 기능"이라며 "아직은 알파고가 인간을 이길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권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2014년 당시 프로 바둑기사가 일반인에 비해 정서적 처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데 근거를 둔다.

당시 연구팀이 12.4년 바둑을 훈련한 전문가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능자기공명영상장치(fMRI) 촬영을 한 결과 전문가군이 일반군에 비해 정서적 처리를 담당하는 편도체 활성도가 더 높았다.

권 교수는 "서로의 수를 해석하는 건 낮은 단계의 수싸움"이라며 "바둑을 두다 보면 정서적 기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고 현재 수준의 인공지능프로그램은 감정적 처리 기능이 부족하므로 알파고가 인간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바둑이 기계가 따라잡을 수 없는 '인간의 영역'으로 여겨진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바둑에서는 기계가 계산할 수 있는 기본적인 규칙과 경우의 수뿐만 아니라 형세를 빠르게 판단하는 직관과 순발력, 대결에서 비롯되는 돌발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 등 다양한 뇌 기능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같은 연구에서 장기간 바둑 훈련을 한 사람일수록 직관적 판단 능력이 뛰어나다는 결과도 함께 내놨다.

그는 "프로 바둑기사일수록 직관적 판단 능력에 관여하는 전두엽 부위 기능의 활성도가 더 높았다"면서 "반복된 바둑 훈련이 뇌 기능을 증진한다는 기존 가설과 상식을 검증한 셈"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바둑 훈련이 인간의 뇌 기능을 증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파고 역시 유사한 훈련을 통해 인간을 위협하는 인공지능으로 성장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중국의 프로기사 판 후이를 5대 0으로 꺾은 전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알파고는 바둑 고수들의 16만개의 기보와 3천만개의 착점 자료를 확보해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사용했다.

딥러닝은 인간의 뇌세포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모방하기 때문에 알파고는 이전의 어떤 인공지능보다 인간과 비슷하게 바둑을 둔다.

즉, 자료가 축적될수록 알파고의 인지 능력도 향상된다는 얘기다.

알파고는 실제 대국에서도 계산할 수 있는 수가 많아지는 중·후반의 정확도가 높다.

이 같은 알파고의 방대한 자료는 장점인 동시에 약점으로도 꼽힌다.

자료에 기반한 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정서적 처리나 돌발적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점은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이밖에 반복되는 바둑 훈련이 아동의 주의·집중력을 향상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명지대 바둑학과 연구팀은 2008년 바둑학원에 다니는 학생 22명과 그렇지 않은 학생 22명의 뇌파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바둑을 배우는 학생들의 주의·집중력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향상됐고, 스트레스 저항능력과 좌우 뇌균형 발달 정도도 더 높았다.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이영식 교수팀도 2014년 바둑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의 인지 기능 개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결과는 그해 4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지(Psychiatry Investigation)에 실렸다.

한덕현 교수는 "ADHD 아동은 뇌의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있어 집중을 잘 못하거나 충동적인 성향을 보인다"며 "연구대상 아동의 전두엽 활성도를 파악한 결과 바둑이 전두엽 기능을 활성화해 ADHD 아동의 인지 기능과 집중력 증진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상금 100만 달러를 놓고 다섯 차례에 걸쳐 대국을 펼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jan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