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 & Mobile] 디지털 콘텐츠 영구 보관 '슈퍼맨 외장하드' 실용화 성큼
동영상과 음악파일 같은 디지털 콘텐츠 수요가 늘면서 개인마다 컴퓨터에 연결해 쓰는 외장 하드디스크를 한두 개쯤 가진 경우가 많다.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거래되는 외장하드의 크기는 1~2테라바이트(TB). 이 정도 용량이면 고화질 영화를 담은 DVD가 220장, 4메가바이트(MB) 크기 음악 파일은 25만곡이 들어간다. 크고 무겁고 느린 기존 외장형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가볍고 빠른 휴대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대체하고 있지만 용량 문제는 여전하다. 또 SSD 가운데 상당수가 200만 시간을 보증한다. 약 200년이 넘는 기간이지만 후대를 위한 영구적 자료 보관용으로는 좀 모자란다.

영국 과학자들이 최근 디지털 콘텐츠를 거의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저장매체를 개발했다. 유리로 된 동전 크기의 이 저장장치는 영화 슈퍼맨에서 처음 등장한 적이 있어 ‘슈퍼맨 하드디스크’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각종 서적과 문서처럼 디지털 콘텐츠도 인류의 유산처럼 보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 사우샘프턴대 광전자연구센터는 이달 초 유리로 된 동전만 한 디스크에 100억년 이상 360TB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이 디스크는 3개 층이 5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정교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유리층에는 3차원 좌표를 지닌 수 나노미터(1㎚=10억분의 1m) 크기의 점이 찍혀 있다. 1000조분의 1초 간격으로 빛을 쏘는 펨토초(1fs=1000조분의 1초) 레이저로 파일에 저장된 디지털 정보를 유리판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이 레이저는 고출력 에너지를 한 점에 집중할 수 있어 금속이나 세라믹 등 재질에 상관없이 세밀하게 가공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각층에 새겨진 나노미터 크기의 점들은 3차원 좌표와 함께 서로 다른 크기와 방향성을 가진다. 5차원(5D)의 정보를 담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5D 광학저장 기술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유리 디스크의 독특한 나노구조에 저장한 정보는 빛을 통과시켜 다시 읽어들인다. 빛이 각각의 점들을 지날 때 나타나는 특징을 포착해 다시 디지털 정보로 바꾸는 것이다. 연구진은 2013년 첫 시연을 하면서 300킬로비트(Kb) 크기의 문서 파일로 실험했다. 이번에는 근대 헌법과 인권의 초석이 된 마그나카르타(대헌장)와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문, 성서를 담은 유리 디스크를 제작했다.

연구를 주도한 피터 카잔스키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실온에서 최대 138억년간 변질 없이 저장할 수 있다”며 “최대 섭씨 1000도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138억년 전 우주가 급팽창한 빅뱅이 일어난 뒤 지금까지 이르는 기간에 해당한다. 사실상 불멸의 저장장치인 셈이다.

디지털 기기의 증가로 데이터 트래픽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인텔에 따르면 2020년까지 500억개의 기기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면서 2019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 트래픽은 연간 2제타바이트(ZB)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 슈퍼맨 하드디스크처럼 더 작고 빠르고 영원불멸할 저장장치 기술의 진보도 계속해서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