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진 기자 ] 불과 두 달 전이다. 이동통신사들이 '팬택 살리기'에 나선다고 밝힌 시점이다. 당시 팬택의 주력 스마트폰인 '베가 시크릿 업'은 출고가가 37% 강제 인하된 채 팔렸다. 팬택과 재고보상 방안에 대한 합의 없이 이통사가 단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오픈노트] 팬택, 몰락한 배경 알고 보니 …
이통사의 일방적인 '팬택 살리기'는 곧 '팬택 죽이기' 아니냐는 진실 공방으로 이어졌다. 현재 팬택 생명줄을 쥐고 있는 이통사가 출자전환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그 때 진실 또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팬택은 8일 '운명의 날'을 맞는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1800억 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이미 한 번 거부했다. 채권단이 제시한 조건에 따르면 이통사가 출자 전환을 끝내 거부할 경우 팬택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통 업계에선 여전히 부정적인 기류가 흐른다. 이통사 관계자들은 "팬택을 왜 꼭 살려야 하냐"라며 되묻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휴대폰 판매 상인들이 오히려 팬택 판매장려금 일부를 출자전환할 수 있다며 발 벗고 나섰다. 온도차가 확연하게 다르다.

'팬택 살리기'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통사가 올 초부터 벌인 '1.23 대란' '2.11 대란' '2.26 대란' 등 보조금 폭격의 최대 희생자가 팬택이기 때문이다.

팬택은 올 1월과 2월 연속 흑자를 내며 재기 발판을 다졌다. 하지만 정부가 불법 보조금 경쟁을 벌인 이통 3사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팬택은 회생의 끈을 놓쳤다. 팬택은 지난 1분기 67억9400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7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팬택은 올 5월 야심작 '베가 아이언2' 출고가를 78만3200원으로 낮추며 활로를 찾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제품 가격을 내리기 전이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갤럭시S5, 아이폰5S뿐 아니라 당시 갓 출고된 LG전자 'G3'에도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구조조정을 단행한 팬택은 월 15만 대 이상 단말기를 판매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고 자신하고 있다. 채권단이 이통사에게 출자전환으로 요구한 1800억 원은 제품 판매를 위해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이다.

자본시장에서 경쟁력 없는 기업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통사들은 현재 팬택의 경쟁력으로 회생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다만 채권단이 책정한 팬택의 기업가치(3820억원)는 청산가치(1890억 원)보다 높다.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현실적인 보조금 상한선과 영업정지 여파로 어려움을 겪던 팬택에 유통상들은 유통 보조금을 출자전환해 돕겠다는데 통신사들은 뭘 하고 있나"며 쓴소리를 했다. '영업정지로 손해본 이통사는 없다' '보조금 규제로 팬택만 타격입었다'는 수 많은 댓글도 달렸다.

일각에선 단말기 제조업체가 팬택 없이 삼성전자, LG전자의 '2강 체제'로 변모하는 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공정한 시장 경쟁이 힘든 상황에서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그 외 팬택 특허 등 수 많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여론은 분명 이통사가 '팬택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유죄'를 외치고 있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