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업체 감원에도 월급.직원.생산규모 늘려
매출규모 50% 성장..세탁기 점유율 1위

"위기인데도 해고하지 않고 오히려 월급을 올려 줬으니 일할 의욕이 넘칠 수밖에 없죠."
모스크바 시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LG전자의 러시아 루자 공장. 8일 찾아 본 이 공장 LCD TV 조립 라인에서는 20~30대의 젊은 러시아 현지 근로자들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부품을 다루고 있었다.

러시아가 10년 만에 찾아온 경제 위기로 고전하고 있으나 이 공장 전체엔 활기가 넘쳐났다.

2006년 9월 가동에 들어간 이 공장엔 현재 한국인 직원 20여 명을 포함해 약 1천300명이 근무하고 있다.

LG전자 폴란드와 터키 공장보다 규모가 크다.

당시 러시아 경제가 호황이었다고는 해도 열악한 기업 환경과 인프라 부족, 러시아식 관료주의 등을 고려하면 가전제품 공장을 세우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시장 침투를 위해서는 현지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1억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TV, 냉장고, 세탁기, 음향기기 생산 설비를 차례로 구축, 본격적으로 라인을 가동했다.

까다로운 수입 통관 절차로 부품 공급에 애를 먹는 등 적지않은 장애물도 있었지만 엄격한 품질관리와 함께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차근차근 러시아 시장을 공략해 나갔다.

공장을 세우고 2년이 채 안 돼 루자 공장에서 만들어진 가전제품들이 러시아 주부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고 매출도 덩달아 올라갔다.

막 안정 궤도에 진입하려던 순간 국제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경기가 침체하면서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도 대량 해고를 단행했고 일부 업체는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자 공장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여기며 공격적으로 나갔다.

현지 직원들의 고용 불안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다.

인근 외국계 제조업체에서 직원 100여 명을 해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직원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반면 LG 측은 직원을 더 뽑고 봉급도 인상했다.

직원들의 사기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일에 능률도 배가됐다.

덕분에 제품 불량률도 크게 개선됐다.

TV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알렉산드르 야쿠닌(30) 씨는 "경제 위기인데 월급을 올려주고 제품 판매도 늘자 직원들 모두가 안심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수치로 나타났다.

세탁기의 경우 지난해 8월 5.9%이던 시장 점유율이 지난 8월에는 17.5%로 3배 가량 신장하면서 현지 업체와 독일 업체를 모두 제치고 1위로 부상했다.

다른 제품의 판매율도 모두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연간 기준으로 매출 규모가 지난해보다 약 1.5배 늘었다.

내년에는 생산 규모가 20~30% 더 늘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초 루자 공장에 부임한 최경석 공장장(상무)은 위기 극복 비결에 대해 "직원들의 실직 두려움을 없애 주려 노력했고, 회사를 믿고 따르도록 했으며, 그들의 노동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LG전자 본사에서 혁신팀을 이끌었던 최 공장장은 금융위기 이후 1년 넘게 매주 1회 현지 직원들과의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고 그들의 애로 사항을 청취, 작업 현장에 이를 반영하고 있다.

루자 공장의 성장에는 7개 한국 협력업체도 큰 역할을 했다.

최 공장장은 "LG라는 기업을 믿고 함께 러시아 시장에 진출해 준 한국 중소기업들이 뛰어난 품질의 부품을 생산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이룰 수 있었다"고 밝혔다.

러시아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발트 3국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LG전자 루자 공장은 2011년 러시아 가전 시장 점유율 1위, 2011년에는 독립국가연합(CIS) 전체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