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비디오게임 1위 닌텐도의 질주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주력 게임기인 위(Wii)와 닌텐도DS의 판매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시장 조사업체인 NPD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닌텐도 Wii의 전 세계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4%나 감소했다.

닌텐도의 실적도 덩달아 나빠지고 있다. 지난 1분기(4~6월) 닌텐도 매출액은 2534억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1% 감소했다. 순이익도 60%나 줄어들었다.

닌텐도는 판매 부진이 이어지자 지난 25일 Wii 가격을 전격 인하했다. 닌텐도가 Wii 가격을 낮춘 건 2006년 출시 후 처음이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경기침체 직격탄

닌텐도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요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다.

경기가 나빠지자 비디오게임업계 세계 1위이자 상대적으로 고가전략을 펴오던 닌텐도가 직격탄을 맞은 것.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지난 2007년까지 매년 20% 이상 고속 성장을 하던 세계 비디오게임 시장의 성장률은 지난해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신작 판매 부진은 미국 내에서 중고게임의 판매가 늘어나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최대 게임숍인 게임스톱(Gamestop)에서 중고게임 판매 비중은 2006년 7~8% 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23%에 달할 정도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할 만한 게임이 없다

하지만 경기 불황만으로 닌텐도의 부진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경쟁제품인 마이크로소프트(MS) Xbox360의 판매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닌텐도의 게임기로 즐길 만한 게임 소프트웨어가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닌텐도는 2007년 출시해 2182만장을 판매한 건강관리 게임 '위 피트(Wii fit)'이후 이렇다 할 만한 게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닐슨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닌텐도 Wii를 보유한 소비자들 가운데 실제로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의 6%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킬러 타이틀'의 부재는 소비자 만족도에서도 그래도 드러난다. 지난 5월 일본 게임시장조사기관인 아스키(Asuki) 종합연구소가 실시한 콘솔 게임기 이용자 조사에서 닌텐도는 MS,소니에 뒤지며 만족도 측면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유저들은 킬러 타이틀이 없다는 점,수준 낮은 그래픽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일본 현지에서 닌텐도가 MS에 뒤진 것은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소니와 MS는 하반기 들어서도 검증받은 대작을 잇따라 선보이며 닌텐도의 약점을 파고들고 있다.

소니는 올 연말 총 40개 이상의 게임을 플레이스테이션3(PS3)용으로 선보인다. MS는 지금까지 2700만장이 팔린 대작 액션게임 '헤일로3;ODST'를 비롯해 격투게임 '철권6','파이널판타지13' 등을 연말께 선보인다. 여기에 MS와 소니는 닌텐도의 장기였던 모션 컨트롤러(게임기가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해 플레이하는 것)를 한층 발전시킨 새로운 게임기 개발을 선포했다.

가격 메리트 상실

닌텐도의 최근 부진은 경쟁사들이 제품 가격을 인하하면서 가격 메리트를 상실한 측면도 있다. 소니는 이달 초 신제품인 'PS3 슬림'을 선보이면서 가격을 100달러나 내린 299달러로 책정했다.

MS 역시 Xbox360 보급형 모델 '프로 버전'의 가격을 Wii와 같은 249달러로 낮췄다. 가격 인하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PS3 슬림은 9월 첫째 주 일본에서 15만여대가 팔렸다. 2006년 PS3가 첫선을 보였을 때 기록한 8만8000대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다급해진 닌텐도는 3년 만에 가격 인하 카드를 뽑아들었다. 다음 달 1일부터 일본에선 5000엔 낮춘 2만엔,북미에선 50달러 인하한 199달러로 Wii를 판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가격 인하 효과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매력적인 게임타이틀이 없다는 약점을 보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판매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위정현 중앙대 콘텐츠경영연구소장은 "닌텐도는 사상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후속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다,경쟁사들의 추격도 거세 예전같은 위력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기/이미아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