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강릉 경포대는 칠흑처럼 깜깜했다. 파도를 바라보며 소주 병을 병째 들이붓던 35세 청년 사업가 이재통의 가슴도 경포대의 밤처럼 까맣게 타들어갔다. 15세에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와 발전설비 기술을 어깨너머로 익히며 20년간 맨손으로 쌓아온 모든 것이 거래처인 한보철강이 부도나면서 한순간에 날아간 뒤였다. '이젠 끝이구나….'

'마지막' 소주 병을 비우려는 찰라 참을 수 없는 복통이 밀려왔다. 해변을 뒹굴던 그는 주변 휴게소를 기다시피 찾아가 가까스로 용변을 본 뒤 변기 레버를 눌러 물을 내렸다. 그러던 중 머릿속에 벼락처럼 떠오른 게 있었다. '지저분한 변기물을 보지 않고 물을 내릴 수는 없을까?'

아픈 배를 움켜쥐고 서울로 올라 온 지 10년.그는 무전원 자동 물내림기를 개발, 2007년 대한민국 특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수압을 이용해 전기장치 없이도 용변시 적정 양의 물을 자동으로 내려주는 이 발명품은 서울대병원에 설치한 결과 57%의 절수효과를 내는 등 친환경 발명품으로 검증되면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올해 다시 발명의 날 석탑산업훈장을 받은 그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처칠의 한마디가 지난 10년간 생의 좌표였다"며 "실패가 결국 성공의 자산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특허청(청장 고정식)은 발명의 달 5월을 맞아 우수 발명이야기를 담은 책자를 24일 펴냈다. 여러차례의 죽을 결심 끝에 자동 물내림 장치를 개발한 이재통씨, 수없는 실패와 좌절 끝에 호흡기질환 내성균주에 약효를 나타내면서 부작용은 감소시킨 퀴놀론계 항생제를 개발한 오윤석 동화약품 수석연구원 등 우수 발명가 10인과 세계적인 LED기술을 개발했지만 국제특허소송에 휘말렸다가 대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한 서울반도체 등 5개 기업의 발명 이야기 등 총 15편이 담겨있다. 발명에 따른 난관과 극복사례,에피소드,기술개발 성과,사업화 진행시 어려웠던 일과 극복사례 등이 수필형식으로 기록돼 흥미를 더했다. 고정식 특허청장은 "발명을 꿈꾸는 사람들과 국경 없는 지식재산전쟁을 치르고 있는 기업가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책자는 발명유관기관,발명교실 등에 무료로 배포될 예정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