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sensor) 가전' 시대가 열렸다. 소비자들 귀엔 낯설게 들리는 '센서 가전'.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냉장고를 예로 들어 보자.냉장고에 부착된 센서는 온도가 떨어지면 알아서 감지해 원래 온도로 높여 준다. 그뿐인가. 요즘에는 필터가 더러워지면 자동으로 청소하는 에어컨에 혼자 알아서 돌아다니며 더러운 곳을 청소해 주는 로봇 청소기까지….많은 제품들이 센서를 달고 있다.

◆센서가 뭐기에

이래도 어렵다면 사전을 빌려 보자.센서의 정의는 이렇다. '[명사]소리,빛,온도,압력 따위의 여러 가지 물리량을 검출하는 소자.또는 그 소자를 갖춘 기계장치.'

센서의 시작은 아주 간단했다. 처음엔 냉장고 문을 열면 불이 자동적으로 켜지는 것이 기초 단계였다. 하지만 점차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1980년대에는 전자식 센서가 활약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옷을 넣으면 무게와 물높이를 자동 설정해 주는 '퍼지 기술'이 대세를 이뤘다.

센서가 이같이 진화하게 된 것은 소비자들의 불편 때문이었다. 드럼세탁기 업체들의 가장 큰 고민은 헹굼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통돌이 세탁기보다 때가 덜 빠지고 세제가 남는다"는 소비자들의 우려가 높아지자 업체들은 세제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헹굼을 잘할 수 있는 세탁기 개발에 나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안심 센서'.LG전자는 지난해 12㎏짜리 드럼세탁기 '트롬' 내부에 안심 센서를 달았다. 세탁물을 감지해 물에 남아 있는 세제 농도를 자동으로 측정, 헹굼을 조절해 줄 수 있도록 한 것.섬유 속에 배어 있는 세제까지 감지해 세탁 시간을 계산하도록 만들었다. 박용 LG전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각국별로 다른 수질을 감안해 세탁 기능을 조절하는 센서 개발까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로봇 청소기의 두뇌도 '센서'

요즘 맞벌이 부부들이 자주 찾는다는 로봇 청소기에서도 센서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초기 모델은 전원을 켜면 방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쓸고 닦았지만 최근 개발된 제품들은 방 안 가구의 위치를 파악해 효율적으로 청소하도록 만들어졌다. 2008년 LG전자는 로봇 청소기 '로보킹'에 위치정보 센서(자이로 퓨전센서)를 달았다. 청소할 곳을 가로 3m 세로 3m로 나눠 분석한 뒤 지그재그 주행으로 꼼꼼하게 청소하도록 한 것.센서의 원리는 돌고래,박쥐가 초음파를 방사해 장애물을 파악하는 데서 따왔다. 빛을 감지하는 광학 센서만을 사용하면 유리 같은 투명한 물체는 파악이 안 돼 어렵다는 점을 개선한 것이다.



◆인체감지 에어컨의 탄생

센서의 활약은 에어컨으로도 옮겨왔다. LG전자는 최근 인체감지 센서를 에어컨에 넣었다. 단순히 시원한 바람을 뿜어 주는 것이 아니라 방에 있는 사람의 위치를 파악해 바람의 세기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인체감지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센서 덕분에 LG전자 에어컨은 사람 수와 각각의 체온,위치 등에 따라 냉방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체감지 센서 개발에만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100년 만의 무더위로 불리던 2006년 여름 장규섭 LG전자 선임연구원은 "에어컨이 직접 사람을 인식해서 바람을 자동으로 맞춰 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센서 개발이 난관이었다. 방에 있는 사람의 위치를 각도와 거리를 계산해 정밀하게 감지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같은 바람이라도 시원함을 느끼는 체감 지수가 달랐다. 장 선임연구원은 바람의 속도를 잴 수 있는 센서를 들고 밀양의 얼음골,지리산,경포대 등 전국 유명 각지를 돌았다. 또 1000명이 넘는 소비자를 만나 기분 좋은 바람을 만들 수 있는 알고리즘 개발 자료를 만들었다. 그렇게 자료를 쌓으며 개발한 인체감지 센서는 사람이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시원한 바람을 보낼 수 있는 에어컨 개발의 밑바탕이 됐다. 장 선임연구원은 "인체감지 센서 개발로 기존 제품 대비 냉방 속도는 2배 높이고 필요한 곳에만 바람을 보내 소비 전력을 55%가량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센서 가전의 진화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장 선임연구원은 "센서 기술의 발달로 앞으로 수년 내 사람의 체질에 따라 각각 다른 바람을 내보낼 수 있는 '사상의학' 에어컨까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