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인텔과 AMD가 경쟁을 벌이는 사이에 가격이 뚝뚝 떨어지더니 이젠 그래픽카드보다 싸졌다.

PC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성기엔 20%를 넘었으나 지금은 10%도 안 된다.

'CPU의 굴욕'이라고 할 만하다.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가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주요 인터넷몰의 CPU 판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가격이 6만원대에 불과한 보급형 제품이 판매량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AMD 애슬론64-X2 4000+,2위는 인텔 펜티엄 E2140으로 가격이 각각 6만3000원과 6만4500원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그래픽카드 판매 1위 제품인 지포스 8600GT는 평균가격이 12만9000원,2위 지포스 8500GT는 9만원이었다.

1위 제품끼리 비교하면 CPU가 그래픽카드의 절반에 불과하다.

PC 가격에서 CPU가 차지하는 비중도 뚝 떨어졌다.

2,3년 전만 해도 100만원대 PC에서 CPU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15~20%나 됐다.

당시엔 인기 제품인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 가격이 15만~20만원대를 호가했다.

하지만 이제는 PC 1대를 70만원이면 조립할 수 있고 6만원대면 쓸 만한 CPU를 구입할 수 있다.

CPU가 차지하는 가격 비중도 10% 아래로 떨어졌다.

정세희 다나와 팀장은 "2년 전만 해도 10만원대 중반의 펜티엄 프로세서가 판매 수위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6만원대 제품이 가장 많이 나간다"며 "6만원대 듀얼코어 제품도 3D(입체) 게임 구동에 문제가 없으니 CPU보다는 그래픽카드에 더 투자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보급형 CPU를 많이 찾는 것은 인텔과 AMD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면서 가격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올초부터 듀얼코어 제품군에서 가격경쟁이 심해져 관련 제품 가격이 과거 셀러론급 수준인 6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셀러론 제품은 이제 3만원대 후반이면 살 수 있다.

CPU가 단기간에 '싱글코어(CPU의 핵심인 코어가 1개)→듀얼코어(2개)→쿼드코어(4개)' 순으로 진화하면서 성능이 크게 향상된 것도 보급형 수요가 늘어난 이유다.

지난날 셀러론 CPU는 3D 게임이나 동영상 처리에서 애로를 겪었지만 이젠 보급형 듀얼코어 CPU면 웬만한 작업은 무리없이 처리할 수 있다.

인텔과 AMD는 CPU 수요가 보급형으로 몰리자 고급형 수요 창출에 애를 먹고 있다.

인텔은 쿼드코어 마케팅에 전력을 쏟고 있다.

AMD도 이달 중 데스크톱용 쿼드코어 제품을 내놓는다.

하지만 보급형 듀얼코어 CPU의 가격 대비 성능이 워낙 좋아 20만원이 넘는 쿼드코어 수요가 살아날지는 미지수다.

박성민 인텔코리아 마케팅본부장은 "단순히 보급형 수요가 늘었다기보다는 2,3년 전에 비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CPU의 폭이 넓어졌다고 봐야 한다"며 "고화질 동영상이나 고성능 3D 게임 이용자가 늘고 있어 쿼드코어급 고성능 CPU 수요도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