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 교수진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순혈주의'다. 서울공대 출신이 아니고는 교수가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서울대 출신이 아닌 사람이 교수가 되면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김상국 교수(35)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포항공대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을 뿐 아니라 학부도 KAIST를 나온 순수한 '비(非)서울대'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또 채용당시 지원자 14명중에는 서울대 박사 3명과 미국 하버드 MIT 등 외국 유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실력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포항공대의 한 교수는 "김 박사처럼 실력을 갖춘 사람이 서울대 교수가 됐다고 해서 세간의 화제에 오르는 현실은 다른 대학 박사 출신이 서울대 문을 뚫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전기컴퓨터 공학부 김남수 교수(38)도 비슷한 케이스다. 김 교수는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다음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그는 지난 1998년 서울대 공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KAIST 박사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모교에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도 서울대 출신이 아닌 사람이 교수로 채용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설립 이래 42년동안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교수자리를 찾고 있던 중 마침 서울대에서 내가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던 분야의 교수를 모집했다"며 "교수를 뽑는데 박사학위를 어디서 받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도 별다른 교수로 통한다. 서울대에서 몸담은 지 4년여가 흘렀지만 아직까지 공대뿐 아니라 서울대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KAIST 박사출신이다. 현재 서울대공대 교수는 모두 2백61명.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유학파가 2백31명, '토종박사'가 30명이다. 이 가운데 서울대 박사가 26명으로 비서울대 출신은 4명에 불과하다. 학부과정으로 분류하면 서울대 출신은 2백48명으로 95%를 넘는다. 교수진을 모교 출신으로 채우는 '순혈주의'는 서울대공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모교 출신비율도 각각 80%와 60%를 넘는다. 그러나 서울대는 유독 심하다. 교수중 모교출신이 94%에 달하고 있다. 서울대공대의 순혈주의는 외국에서와는 판이하다. 미국이나 유럽대학에서는 그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순혈주의를 연구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학문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학문적 근친교배'(inbreeding)로 보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의 경우 1910년대에는 전체교수의 70% 이상이 동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0%대에 불과하다. 스탠퍼드대에서도 모교 학사출신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 학맥과 인맥이 얽히고 설켜서는 자유롭게 학문을 연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혈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1999년 9월30일 이후 3년동안 서울대 등 국립대가 신규 교수 채용시 30% 이상을 다른 대학출신으로 임용하도록 했다. 서울대공대도 오는 9월 임용예정인 21명중 11명을 타대학 출신으로 충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약속이 지켜질 지는 미지수다. 서울대공대의 한 교수는 "다른 대학출신 교수 임용으로 가뜩이나 유학파에 밀려 사기가 저하된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의욕이 상실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민구 서울대공대 학장도 "서울대 교수 임용은 연구성과 위주로 객관적 절차를 거쳐 이뤄지고 있다"며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용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비서울대 할당'이 실력있는 서울대 출신을 푸대접하는 역차별을 몰고올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순혈주의가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순혈주의가 서울 공대의 발전에 도움을 줬는지, 아니면 걸림돌이 됐는지 정확히 계산해낼 순 없다. 역차별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순혈주의가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