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학분야 최고학부인 서울대 공대가 무너지고 있다. 서울대 공대의 연구실은 요즘 정적에 휩싸여 있다. 연구실을 지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공계 기피로 대학원에서 필요로 하는 석·박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연구실을 지키던 일부 연구원들이 어둠살이 퍼지기가 무섭게 연구실을 빠져나간다. 교수들은 세미나 등을 이유로 해외로 나가 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가면 공대생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도서관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고시준비를 위한 것이다. 공대생의 20%가 고시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공대 출신 20명이 지난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세계일류들과 경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할 공대생들이 고시에 혼을 뺏기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의대나 한의대로 가기 위해 자퇴나 휴학을 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기업체로 부터도 대접을 받던 것도 옛말이다. 요즘에는 "서울공대 출신요? 노 생큐입니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국내 대기업 S사는 올 초 기술개발 분야 석·박사학위자를 뽑았다. 수백대1의 경쟁률을 뚫은 최종 합격자는 모두 7명.이 가운데 5명은 미국 MIT와 스탠퍼드,프린스턴 등을 나온 해외파 출신이었다. 국내파는 2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국내파 2명 가운데는 서울공대 출신이 끼지 못했다. 인사 담당자는 "채용과정에서 서울공대 출신에게 붙는 '프리미엄'은 사라진지 오래"라고 밝혔다. 연구쪽에서도 서울공대는 이름 값을 못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까지 연구력 평가잣대인 과학기술 논문 색인(SCI)에 2천5백91편을 실었다. 미국 하버드대(9천2백18편),일본 도쿄대(6천4백39편) 등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국내 대학에도 밀리고 있다. 정부와 산업체 연구비를 훑어가면서도 그 결과는 신통찮다. 지난해 교수 1명당 과학기술 논문 색인에 실린 논문수가 2.2편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3.8편)과 포항공대(3.0편)에도 뒤졌다. '특색없는 대학','백화점식 학문분야'도 불명예스럽게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미국의 MIT나 스탠퍼드,캘리포니아공대,하버드대 등이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서울공대만은 학부제와 대학원 중심대학의 양갈래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다. 지금의 서울공대는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서울공대의 위기는 곧 국내 과학기술계의 위기로 볼 수 있다. 서울공대는 기존 패러다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틀을 짜야한다. 지금이 바로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할 때다. 특별취재반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