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새삼 확인된 인터넷의 위력이 최근 서해교전 사태를 계기로 다시 논란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북한 해군의 무력충돌이 발발한 직후인 7월 1일 '연평총각'이라는 익명의 네티즌은 가수 신해철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서해교전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A4용지 2쪽 분량의 글을 올렸다. 그는 "올해는 유난히 꽃게 흉년이더군요. 금어기는 점점 다가오고…그래서 이곳작업선 선장 60여명이 단합해 북방한계선(NLL)을 넘게 된 것이고, 이번 사건이 터지게 된 겁니다"라고 주장하며 자책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 글에는 26일부터 29일까지 우리 어민들의 시간대별 조업 일지와 교전 상황이상세히 담겨 있어 사이버 공간에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후 일부 언론사등도 연평도 현지 취재를 거쳐 어민들의 조업 사실을 보도해 뜨거운 논란을 빚었다. 국방부는 7일 진상결과 발표를 통해 일부 어민들의 조업한계선 이탈을 인정하며 불법조업을 앞으로 막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평총각'의 주장처럼 우리 어선이 NLL을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연평총각'의 글은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 올바른 대응책을 이끌어낸 측면이 있는 반면 확인되지 않은 NLL 침범설을 사실인 것처럼 유포시켜 국민의 혼란을 부추기고 북한에 대한 협상력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터넷 오보 논란은 월드컵 때 절정을 이뤘다. 6월 27일 SBS FM 「최화정의 파워타임」을 진행하는 최화정씨는 흥분된 어조로 "지금 속보가 들어왔거든요. 핸드폰으로. 이거 사실인가요? 독일이 약물 중독에 걸려서 우리나라가 결승 진출이래요"라고 말했다. 최씨는 곧이어 사실무근임을 밝히고 사과를 했지만 쉽게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언론사와 월드컵조직위 등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고 뒤늦게 SBS에는 항의전화가 쇄도했다.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는 소문이 방송 전파라는 공적 매체에 실릴 때 얼마나 파급효과가 커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이와 함께 사이버 공간의 소식이나 여론이 이동전화라는 매체를 통해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는 사실도 확인시켰다. "6월 25일 KBS 2TV 「세세원쇼」의 진행자 서세원씨가 대표선수 김남일의 아버지를 모독했다"는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 때 KBS 인터넷 게시판에는 협박성 문구가 담긴 서씨의 사과문이 실려 네티즌을 더욱 자극시키기도 했다. 이는 나중에 가짜임이 밝혀졌지만 서씨나 제작진이 당한 피해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월드컵 폐막 전후 대한축구협회가 히딩크 감독과의 재계약을 피하며 히딩크의 유럽 진출을 기정사실화하는 내용을 언론에 흘린다는 의혹이 사이버공간에서 제기돼 축구협회가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일본에 지진이 발생해 일본에 배정된 경기가 한국에서 열린다', '개막식 때 미국의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가 입국했다', '한국팀이 결승에 진출하면 서울에서 결승전을 열기로 이면합의했다', '미국전에서 동점골이 터진 후 안정환 선수 뒤에서 오노 선수를 흉내낸 이천수 선수가 특정인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받았다' 등의 소문이 사이버공간에서 사실처럼 한동안 떠돌았다. 지난달 27일 중국신문의 사이트에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8강전에서 주심을 봤던 에콰도르의 바이런 모레노씨가 이탈리아 마피아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피살됐다는 소문이 올라와 언론의 확인 소동을 빚었다. 인터넷을 통한 소문은 대부분 유행처럼 번져나갔다가 사그러들지만 개인의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도 한다. 인기 탤런트 최진실씨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족과 관련한 추문이 유포되자 당국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우려되는 것은 특정 후보를 겨냥해 쏟아지는 흑색선전.예전에는 투서 형태로 은밀히 유통된 뒤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지만 요즘은 삽시간에 전국민에게 도달된다. 지난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도 다양한 음해성 글들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특정 집단을 옹호, 내지는 비판하는 글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며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사례도 많다. 지난 3일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 서울시민증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이 가족사진을 찍게 했다는 사실과 관련해 서울시 홈페이지에 비난의 글이 잇따르자 이시장을 옹호하는 글이 무더기로 등장해 이시장 측의 `작전세력'이 개입했다는의혹을 사기도 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정운현 편집국장은 "이회창 후보나 노무현 후보에 관한 기사가 뜨면 이를 비난하거나 지지하는 글이 조직적으로 올라온다"면서 "여론이라고 할 수 없는 집단적인 음해성 의견의 처리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폭발적인 보급에 따라 익명성 소문의 증가, 명예훼손, 흑색선전, 여론 조작 등의 부작용이 빈발하자 관련학계와 단체에서는 개선책 마련에부심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이버공간이 자정능력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에 실명제 도입이나 인격모독성 의견 게재 금지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미디어 교육 강화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익명의 제보를 확인없이 방송이나 신문에서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사이버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청소년문화연구소 김옥순 연구실장은 "익명이라는 그늘 아래 언어폭력과 명예훼손이 난무하는 만큼 적어도 공공기관 등에서는 실명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는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명제를 시도하면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라는 인터넷의 긍정적 효과가 사라져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명제 도입 여부를 떠나 전문가들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익명으로 유포되는 소문에 대해 진위를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급학교에서 인터넷과 휴대폰 확산에 따른 미디어교육을 강화하는 방안도 개선책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