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국 과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고려대학교 최의주 교수(44)는 생명과학을 "끈기의 학문"이라고 말한다. "수학이나 물리 분야에서는 천재적인 머리가 요구될지도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생명과학에서는 꾸준한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순간적으로 반짝이는 머리보다 기본 상식을 갖춘 상태에서 끈질기게 실험을 거듭해 결과를 얻어내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오전 9시께 출근해 자정까지 연구실을 지킨다. 과학기술부의 '창의적 연구진흥사업' 지원을 받아 연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한 주 강의는 3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나머지 시간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 최 교수가 처음으로 이름을 떨친 것은 1996년 6월이었다. 당시까지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여겨졌던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연구논문을 발표했던 것. 그것도 기초과학 연구에 주력하기 힘든 민간연구소(한효과학기술원)의 연구원 신분으로 남들이 해내지 못한 업적을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았다. 그는 세포 사멸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어떤 과정을 통해 세포가 죽어가는지 밝혀내는 것이 그의 목표다. 세포가 사멸하는 과정에서 자외선이나 항암제,대사 억제물질 등이 작용한다. 이같은 외부 자극이 있을 때 활성화되는 것이 '단백질인산화효소'다. 이 효소가 장기적으로 활성화되면 세포가 사멸하는 것이다. 네이처에 발표했던 논문은 한 단백질이 세포 성장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세포 사멸에 영향을 끼치는 인산화효소의 조절에도 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세포 성장과 사멸이 상호 연관돼 있고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논문은 현재까지 국제과학논문색인(SCI)에 등재된 논문에만 1백회 이상 인용될 만큼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최 교수는 이같은 성과에 안주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꾸준한 연구를 통해 세포 사멸 조절기전 규명과 관련한 우수한 연구논문을 계속 발표,올해 미국과학자협회 세포신호전달연구회가 추천하는 '금주의 논문'에 3편이 선정되는 유일한 과학자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세포 사멸을 억제할 수 있는 'CIA'라는 유전자를 새로 찾아내는 성과도 냈다. 세포 사멸에 관한 기초연구가 진전되면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신경세포가 사멸하면 노인성 치매가 일어날 수 있다. 뇌에 있는 혈관이 터져 뇌세포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일어나는 뇌졸중도 세포 사멸과 관련된 질병이다. 최 교수팀은 최근 노인성 치매의 발병 원인 유전자인 '프로시닐린'이 세포 사멸을 조절할 수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세포 사멸의 원리가 밝혀지면 이를 억제하거나 방지하는 약물 개발의 길이 열려 치매 정복도 가능해진다. 뇌졸중의 경우 혈관이 터졌더라도 세포 사멸을 막거나 이를 지연시킬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면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연구 풍토와 관련,"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응용분야에만 지나치게 집중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신약 개발과 같은 응용분야 연구도 게을리해선 안되겠지만 획기적인 성과는 기초연구에서 나오는 만큼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에 대해서는 "돈을 번다거나 유명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며 "스스로 만족하는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