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정보기술)벤처에서 일하는 김영석 과장(33)은 지난 여름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자신감을 갖게 됐다. IT 강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을 둘러봐도 우리보다 그리 나을게 없어 보였다. 특히 인터넷에 관한 한 한국에 한참 뒤져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특급 호텔이 아니어서인지 객실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고 비즈니스룸을 이용할 경우 요금이 매우 비쌌다. 객실에서 공짜로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한국과는 딴판이었다. 김 과장의 경험이 단편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에 다녀온 사람 중엔 인터넷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김 과장은 "무선 인터넷이나 전자상거래가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초고속인터넷과 이동통신이 IT 수준의 가늠자"라며 "이것만 놓고 보면 IT 강국이라고 자부할 만하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한국의 IT 수준을 평가하는 자료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행하는 격월간 'ITU뉴스'는 8월호에서 '한국의 ADSL 성공'이란 제목의 기사를 싣고 한국에서 초고속인터넷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요인으로 정부의 경쟁정책 도입과 사업자간 요금경쟁, 아파트 위주의 주거형태 등을 꼽았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을 세계 1위의 초고속인터넷 국가로 인정한 바 있다. 'e재팬'을 추진중인 일본에서는 요즘 한국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 벤치마킹이 한창이다. 정보통신부가 금년 초 '정보강국 e코리아 건설'을 국정 화두로 들고 나온 것은 IT 인프라가 성공적으로 구축돼 정보강국 도약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2005년까지 3단계 초고속정보통신망 고도화 완료 전자정부 기반 조성 및 디지털행정 구현 IT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 2005년 수출 1천억달러 달성 등을 목표로 정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난달에는 전경련과 공동으로 'e코리아 추진 민관협의회'를 발족했다. 그러나 'e코리아' 건설을 가로막는 걸림돌도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IT 인프라를 활용할 비즈니스모델이나 콘텐츠가 부족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엄청난 돈을 들여 '정보고속도로'를 깔았지만 이 도로 위를 달릴 자동차가 부족해 달구지나 자전거만 다니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초고속통신망과 이동통신망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깔았다고 자랑만 할게 아니라 이 인프라를 수익사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IT 비즈니스모델과 콘텐츠를 개발해야 할 IT 기업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다. '닷컴 거품'이 꺼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기술력과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까지 잔뜩 위축되어 있다. 이 와중에 미국 일본 등의 자금이 우량 IT벤처를 하나씩 장악해 기술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 요즘 온라인 게임업체에는 일본 기업인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IT산업 육성을 주도하는 '컨트롤타워'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나오는 것도 문제이다. 지난해부터 IT산업 각 분야에서 정통부 산자부 문광부 등이 영역다툼을 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정통부와 문광부의 다툼으로 법 제정이 1년이나 늦어져 불만을 사고 있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IT 분야에서는 반년이면 세상이 바뀐다"면서 "잠깐 우쭐해 하거나 부처간 다툼으로 정책이 제때 나오지 않으면 눈 깜짝할 새 추월당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